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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24일 개봉한 신민아 주연 스릴러 '눈동자'는 2011년 스페인 영화 '줄리아의 눈'을 리메이크한 작품입니다. 저는 원작을 개봉 당시 극장에서 봤던 사람이라, 이번 리메이크 소식을 들었을 때 반가움보다 걱정이 먼저 들었습니다. 좋아하는 원작이 잘못 다뤄지면 실망이 두 배가 되니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예상보다 훨씬 영리한 지점이 있었고, 동시에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지점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원작비교 — 구조는 같고, 속은 달랐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원작을 알면 리메이크를 볼 때 거의 모든 장면이 예측 가능하리라 생각했는데, 막상 앉아서 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눈동자'의 주인공 서진은 사진작가입니다. 시력이 서서히 나빠지는 유전병을 가지고 있고, 먼저 시력을 잃은 쌍둥이 동생 서인이 목 매달린 채 발견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신민아가 1인 2역을 소화했는데, 동생 서인은 과거 회상 장면으로만 짧게 나옵니다. 등장인물 구성은 원작과 거의 정확하게 숫자가 맞아떨어집니다. 두 명의 형사, 동생에게 밥을 해주던 아주머니, 동네 주민 부자(父子) — 이렇게요.
그런데 여기서 리메이크의 첫 번째 영리함이 나옵니다. 원작에는 주인공의 남편 캐릭터가 있는데, 리메이크에서는 그 자리에 스토커가 들어섭니다. 완전히 반대 성격의 캐릭터 교체입니다. 원작의 남편은 주인공을 도와주는 존재였다가 나중에 비밀이 드러나는 구조였고, 리메이크의 스토커는 처음부터 주인공을 괴롭히는 존재입니다. 제가 보기엔 이 교체가 꽤 용감한 선택이었습니다. 단순히 성별이나 이름을 바꾸는 수준이 아니라, 캐릭터의 기능 자체를 뒤집어버렸으니까요.
리메이크(remake)란 원작의 스토리 골격을 유지하면서 배경, 인물, 주제를 현지화하거나 재해석하는 작업을 말합니다. 이 개념으로 보면 '눈동자'는 골격은 원작을 따르면서도 핵심 부품들을 상당히 다르게 조립했습니다. 어떤 부품 교체는 매끄러웠고, 어떤 것은 좀 삐걱거렸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 원작 '줄리아의 눈': 주인공 남편 캐릭터 존재, 형사 1명, 각막 이식 후 남편 기증 각막이라는 뭉클한 마무리
- 리메이크 '눈동자': 남편 대신 스토커 캐릭터, 형사 2명, 자매애를 중심으로 한 마무리
- 공통점: 동네 주민 부자(父子 혹은 父女) 캐릭터가 범인의 정체를 주인공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담당
반전 — 원작을 아는 저도 뒤통수를 맞았다
제가 직접 봤는데, 범인이 누군지는 꽤 일찍 감이 왔습니다. 남자 형사 도혁이 등장하는 순간, '아, 이 사람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원작에서 범인 역할을 한 간병인 캐릭터가 리메이크에서는 빠지고, 대신 형사가 두 명으로 늘어났으니 그 계산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던 겁니다. 원작 팬으로서는 오히려 너무 뻔하게 보이는 게 조금 실망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정말 영리한 건, 그 뻔함을 역이용한다는 점입니다. 주인공이 눈에 붕대를 감고 지내는 기간 동안, 집에 들락거리는 사람들의 얼굴을 카메라가 의도적으로 비추지 않습니다. 원작에서도 간병인의 얼굴을 숨기던 연출인데, 리메이크에서는 이미 앞에서 얼굴이 나온 두 형사까지 똑같이 얼굴을 가려버립니다. 덕분에 관객은 '혹시 범인이 특정되지 않는 건가?' 하고 헷갈리게 됩니다.
실제 범인은 밥 해주던 아주머니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알고 보니 남자 형사 도혁과 그 아주머니가 동일인물이었습니다. 도혁은 어머니에게 병적으로 집착하는 통제적인 관계 속에서 자랐고, 결국 어머니를 직접 살해한 뒤 그 충격으로 자기 내면에 죽은 어머니의 인격을 만들어버린 겁니다. 다중 인격(해리성 정체 장애)을 소재로 한 이 반전은, 히치콕의 '사이코(1960)'에서 노먼 베이츠가 어머니를 살해하고 그 인격을 내면화한 설정과 구조가 거의 동일합니다. 여기서 다중 인격이란 하나의 개인 안에 두 개 이상의 독립된 인격 상태가 존재하는 해리성 장애를 말합니다(출처: WHO 국제질병분류 ICD).
빌런을 연기한 김남희 배우가 여장을 하고 여자 목소리를 내는 장면은 솔직히 벙찌는 기분이었습니다. 임팩트 자체는 확실했습니다. 그런데 이 반전이 '줄리아의 눈' 리메이크의 핵심 반전이 되어버리니, '이건 줄리아의 눈 리메이크가 아니라 사이코 리메이크 아닌가?' 하는 생각이 극장을 나오면서 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임팩트를 위한 선택이었다는 건 이해가 됩니다만, 그래도 과하다는 인상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리메이크의 한계 — 주제가 바뀌면 연출도 달라져야 한다
원작 '줄리아의 눈'을 개봉 당시에 극장에서 봤던 기억이 아직도 선합니다. 그 영화의 진짜 힘은 '관심'이라는 주제에 있었습니다. 아무도 시선을 주지 않아 존재감이 사라진 인간, 그야말로 투명인간처럼 살아온 빌런이 자기에게 눈길을 줄 수 있는 시각 장애인을 표적으로 삼는다는 설정. 눈이 보이더라도 관심이 없으면 못 보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메시지가, 시각 장애라는 소재와 너무나 자연스럽게 맞물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눈동자'는 빌런의 동기를 '무관심'에서 '집착'으로 바꿨습니다. 무관심과 집착은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 정반대입니다. 무관심은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 상태이고, 집착은 내가 타인에게 과도하게 매달리는 상태입니다. 이 전환이 영화의 주제와 소재 사이의 연결 고리를 느슨하게 만들었습니다. 제목 '눈동자'도 영화 첫 장면에서 서진이 자신의 눈동자 사진을 계속 찍는 장면으로 집착의 대상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는데, 원작처럼 자연스럽게 주제와 연결된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오마주(hommage)란 특정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경의를 담아 그 요소를 자신의 작품에 녹여내는 기법입니다. '눈동자'에는 원작의 명장면들이 오마주로 살아 있습니다. 카메라 플래시가 자동으로 연속 터지는 장면, 빌런이 "보지 마!"를 외치며 무너지는 최후, 모두 원작과 동일합니다. 그런데 원작에서 이 장면들은 '무관심했던 자가 모든 시선을 한꺼번에 받는 아이러니'로 주제와 촘촘히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반면 리메이크에서는 이 연출들이 범인의 실체가 드러나는 장면이라는 의미 이상을 갖지 못합니다. 연출을 그대로 가져왔는데 그 연출이 기대던 주제가 바뀌어버린 결과입니다.
영화 연출의 완성도 측면에서 참고할 만한 기준으로, 부산국제영화제(BIFF)는 매년 한국영화의 장르적 성취를 별도로 평가하는데(출처: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사이트), 이처럼 원작의 연출 코드를 재맥락화하지 못하는 문제는 한국 장르 리메이크의 반복되는 과제로 지적되어 왔습니다. 그래도 제 경험상 이 영화는 원작을 모르는 관객에게는 꽤 탄탄한 스릴러로 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배우들 연기가 그 공백을 상당 부분 메워줬고, 신민아의 1인 2역도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원작 '줄리아의 눈'을 먼저 보고 가야 하나요?
A. 원작을 보지 않아도 '눈동자' 자체로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 다만 원작을 아는 관객이라면 리메이크가 어디서 어떻게 뒤통수를 치는지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원작을 알고 봤는데도 핵심 반전에서 허를 찔렸으니, 순서보다는 취향 문제라고 봅니다.
Q. 반전이 너무 황당하다는 반응이 많던데, 실제로 어떤가요?
A. 호불호가 분명히 갈리는 반전입니다. 너무 터무니없다고 느끼는 분들도 있고, 임팩트가 확실하다고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제 경우엔 극장에서 나오는 순간에는 '이건 좀 과하다' 싶었는데, 집에 돌아오며 생각해보니 원작과 차별화하려면 이 정도 강도가 필요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판단은 보고 나서 직접 하시는 게 맞습니다.
Q. 15세 관람가인데 무섭거나 잔인한 장면이 심한가요?
A. 스릴러 장르 특유의 긴장감과 불쾌한 장면은 있지만, 고어(gore)나 극단적 잔인함보다는 심리적 공포에 집중하는 방향입니다. 15세 관람가 등급에 맞게 자극적인 수위는 조절되어 있어서, 공포 영화에 취약한 분이 아니라면 크게 부담스럽지 않을 겁니다.
Q. 김남희 배우의 빌런 연기는 어느 정도인가요?
A. 제가 직접 봤는데, 여장과 여자 목소리를 소화하는 장면에서 '벙찐다'는 표현이 딱 맞을 만큼 강렬했습니다. 설정 자체의 과함과 무관하게, 배우로서의 열연은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 빌런 연기 하나만으로도 볼 이유가 충분하다는 의견이 있을 정도입니다.
결론
정리하면, '눈동자'는 원작을 아는 관객도 뒤통수를 맞게 만든 영리한 리메이크입니다. 동시에 핵심 반전이 히치콕 '사이코'의 설정을 그대로 가져오면서 리메이크 고유의 정체성이 흐릿해진 아쉬운 작품이기도 합니다.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밖에 없고, 그게 이 영화를 둘러싼 반응이 갈리는 이유라고 봅니다.
원작 '줄리아의 눈'이 '관심'이라는 주제로 시각 장애 소재를 촘촘히 엮어냈다면, '눈동자'는 그 엮음을 풀고 '집착'이라는 새 실로 다시 짰습니다. 그 새 실이 완전히 매끄럽지는 않지만, 짜임새 자체는 꽤 단단합니다. 별점 세 개 반이 납득되는 영화였습니다. 원작 '줄리아의 눈'을 아직 보지 않은 분이라면, 리메이크와 함께 원작도 챙겨 보시면 두 작품의 선택이 선명하게 비교되어 더 재미있을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