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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밤에 넷플릭스를 켰다가 '곤지암 감독 신작'이라는 문구 하나에 별 생각 없이 눌러버렸습니다. 2023년 개봉한 정범식 감독의 영화 뉴 노멀입니다. 귀신도 폐가도 없는데, 보고 나서 저녁 뉴스를 다른 눈으로 보게 되는 영화였습니다. 기대와 실제가 꽤 달랐던 경험을 정리했습니다.

 

피해자인 줄 알았는데 — 첫 번째 챕터의 반전 구조

공포 영화를 꽤 봐왔는데, 저는 이 영화의 첫 번째 챕터가 그 어떤 귀신 장면보다 오래 남았습니다. 오피스텔에 혼자 사는 현정(최지우 분)의 집에 예약도 없이 화재센서 검침원이 들이닥칩니다. 뉴스에서는 혼자 사는 여성만 표적으로 삼는 연쇄살인범이 아직 잡히지 않았다는 소식이 흘러나오고, 검침원은 집 안을 허락 없이 돌아다니며 "죽은 여자도 엄청 예뻤대요" 같은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던집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관객은 자연스럽게 현정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혼자 사는 여성, 무례한 낯선 남자, 위협적인 상황. 이 구도는 뉴스에서도 영화에서도 수없이 봐온 피해자의 서사입니다. 그래서 현정이 숨겨둔 전기 충격기를 꺼내 화장실 앞에서 기다리는 장면에서 저도 모르게 그 편이 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TV에서 범인 인상착의가 나옵니다. 170cm대 중반의 여성. 검침원은 진짜 검침원이었고, 현정이 연쇄살인마였습니다. 이걸 페이크 다큐멘터리(fake documentary) 기법처럼 서술합니다. 여기서 페이크 다큐멘터리란 실제처럼 보이도록 연출된 허구의 이야기를 말하는데, 뉴 노멀은 이 기법 대신 관객의 감정 이입 자체를 미끼로 씁니다. 시점을 조작해서 관객이 가해자를 피해자로 착각하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혼자 사는 가족이 있으신 분이라면 이 챕터가 유독 길게 남을 것입니다. 제 경험상 그랬습니다.

현정의 동기가 끝까지 설명되지 않는 것을 의도적인 철학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절반만 동의합니다. 동기 불명의 범죄가 현실 공포의 본질이라는 데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원작인 일본 드라마 토리하다(鳥肌, 소름이라는 뜻)를 한국 현실에 맞게 각색하는 과정에서 채우지 못한 빈자리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미완을 의도로 읽어주는 건 감독에게 후한 점수를 주는 일이고, 관객이 꼭 그래야 할 의무는 없다고 봅니다.

  • 시점 조작: 관객이 가해자를 피해자로 착각하도록 설계된 서술 구조
  • 현정의 동기 불명: "의도적 선택"과 "서사적 공백" 사이에서 해석이 갈림
  • 원작 토리하다의 기본 틀을 한국 현실 범죄 사건들과 결합한 각색
 

선의가 미끼가 되는 세상 — 옴니버스 구조의 힘과 한계

일반적으로 옴니버스 영화라고 하면 각 에피소드가 독립적으로 완결되는 구성을 떠올립니다. 여기서 옴니버스(omnibus) 형식이란 여러 개의 독립된 이야기를 하나의 작품 안에 묶어 구성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뉴 노멀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비선형 시간 구조(non-linear narrative)를 씁니다. 비선형 시간 구조란 이야기가 시간 순서대로 흐르지 않고, 각 챕터의 인물들이 같은 시간대를 살면서 서로를 스쳐 지나가는 방식입니다. 최지우, 이유미, 최민호, 표지훈, 하다인, 정동원 여섯 배우가 각자 한 챕터를 이끌고, 그 챕터들이 교차하며 연결됩니다.

두 번째 챕터의 중학생 승진 이야기가 제게는 가장 쓰린 대목이었습니다. 승진은 버스 정류장에서 휠체어 바퀴가 화단에 걸린 할머니를 보고 가볍게 도와주기로 합니다. SNS에서 착한 일을 하면 칭찬을 받는다는 영상을 보며 "나도 한 번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요. 그런데 골목은 점점 좁아지고, 도착한 곳은 수상한 허름한 건물이었습니다. 배경음으로 피터와 늑대 삽화 음악이 경쾌하게 흐르는데, 그 박자에 맞춰 승진이 납치당합니다. 착한 행동이 범죄의 미끼(social engineering)가 되는 장면입니다. 소셜 엔지니어링이란 사람의 심리나 선의를 이용해 범죄 목적을 달성하는 수법을 말합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이 구조가 가장 강하게 작동하는 순간은 챕터들이 연결되는 접점입니다. 세 번째 챕터의 취업준비생 현수가 데이팅 앱으로 만나기로 한 상대가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첫 번째 챕터의 현정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장면처럼요. 반면 한계도 뚜렷합니다. 챕터마다 인물이 통째로 바뀌다 보니 한 사람에게 감정을 쌓을 시간이 없습니다. 소름은 오는데 마음에 남지 않는 에피소드가 하나둘이 아니었습니다. 곤지암이 단일 공간과 단일 분위기로 전체를 붙들었던 것과 비교하면, 이 차이가 완성도 격차로 직결됩니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출처: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으로 곤지암은 개봉 당시 누적 관객 267만 명을 기록하며 한국 공포 영화 역대 흥행 2위에 올랐습니다. 뉴 노멀이 넘어야 할 기준이 그만큼 높았던 셈입니다.

 

뉴스가 무서워지는 영화 — 현실 공포 장르로서의 가능성

제 경험상 공포 영화를 보고 난 뒤 으스스한 기분이 오래가는 쪽은 귀신이 나오는 작품보다 이런 현실 범죄 기반 작품이 더 많았습니다. 귀신은 불을 켜면 없어지지만, 데이팅 앱은 불을 켜도 거기 있으니까요. 뉴 노멀이 내세우는 현실 공포(reality horror)가 바로 이 지점입니다. 현실 공포란 초자연적 존재 대신 실제 사회 현상이나 범죄를 공포의 원천으로 삼는 장르를 말합니다.

영화 제목인 뉴 노멀(New Normal)은 시대 변화에 따라 새롭게 정착되는 기준과 표준을 뜻하는 용어입니다. 혼자 사는 여성을 노리는 연쇄살인, 선의를 미끼로 삼는 납치, 데이팅 앱을 통한 범죄. 이것들이 뉴스에서 반복되며 새로운 표준처럼 익숙해져 버린 세상. 그 세상의 일상을 그대로 공포의 소재로 끌어온 기획은 분명히 신선했습니다. 원작 토리하다의 기본 설정 위에 실제 국내 범죄 사건들을 덧입힌 각색 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기획의 완성도와 실제 완성도 사이에는 간극이 있습니다. 챕터 하나하나의 서사 밀도가 충분하지 않고, 일부 챕터는 메시지를 말로 설명해 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보여주지 않고 설명하는 순간, 공포는 반감됩니다. 경찰청 범죄통계(출처: 경찰청)에 따르면 데이트폭력 및 스토킹 관련 신고 건수는 매년 증가 추세에 있습니다. 영화가 다루는 현실이 실제로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장르의 잠재력은 아직 충분히 소진되지 않았다고 봅니다.

10점 만점에 6.5점을 주고 싶습니다. 기획과 의도는 뉴 노멀하지만, 완성도는 노멀에 그쳤습니다. 그래도 보고 나서 저녁 뉴스를 다른 눈으로 보게 되는 영화라는 건, 그저 그런 공포 영화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효과입니다. 현재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뉴 노멀 원작이 따로 있나요?

A. 있습니다. 일본 드라마 시리즈 토리하다(鳥肌)가 원작입니다. 토리하다는 일본어로 '소름'이라는 뜻으로, 짧은 공포 에피소드들을 엮은 옴니버스 형식의 작품입니다. 뉴 노멀은 이 원작의 기본 틀을 가져오되, 실제 국내 범죄 사건들을 참고해 한국 현실에 맞게 각색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원작 기반 각색이라면 설정만 바꾼다고 알려져 있지만, 일부 앵글이나 소품까지 유사하다는 지적이 개봉 후 나오기도 했습니다.

 

Q. 곤지암이랑 비슷한 스타일인가요?

A. 감독은 같지만 스타일은 상당히 다릅니다. 곤지암은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단일 공간에서 분위기를 끝까지 쥐고 가는 방식이었습니다. 뉴 노멀은 귀신도 폐가도 없이, 실제 뉴스에 나올 법한 범죄 상황을 공포의 소재로 씁니다. 제 경험상 극장에서 보는 즉각적인 공포감은 곤지암 쪽이 강했고, 보고 나서 일상이 불편해지는 잔여 공포는 뉴 노멀 쪽이 오래 남았습니다.

 

Q. 챕터 중 어떤 게 제일 잘 만들었나요?

A. 제가 보기엔 첫 번째 챕터(최지우 편)가 압도적입니다. 귀신 한 마리 없이, 관객이 편이라고 믿었던 인물이 가해자로 드러나는 순간을 단 한 장면의 표정 변화로 보여줍니다. 이래서 영화라는 매체가 무서운 겁니다. 일반적으로 공포 영화의 반전은 과잉 연출로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 챕터는 설명 없이 시점만 바꿔서 소름을 만들어냅니다.

 

Q.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나요?

A. 2024년 기준으로 넷플릭스에서 스트리밍 중입니다. 극장 개봉 당시에는 흥행이 기대에 못 미쳤지만, 넷플릭스에 올라온 뒤 순위권에 다시 오른 바 있습니다. 제 경우엔 극장 개봉 때 놓쳤다가 넷플릭스에서 처음 봤는데, 오히려 혼자 조용히 보는 환경이 이 영화의 현실 공포 톤과 잘 맞았습니다.

 

결론

뉴 노멀은 정범식 감독이 현실 공포라는 장르의 가능성을 탐색한 작품입니다. 귀신 없이 뉴스만으로 공포를 만들겠다는 기획 자체는 유효했고, 옴니버스 챕터들을 같은 시간대 안에서 교차시키는 비선형 시간 구조도 신선한 시도였습니다. 첫 번째 챕터 하나만으로도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챕터 사이의 서사 밀도 차이가 크고, 인물에 감정을 쌓을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10점 만점에 6.5점. 기획은 뉴 노멀, 완성도는 아직 노멀입니다. 혼자 사는 가족이 있거나 요즘 세상이 마음에 걸리는 분께 권하고 싶습니다. 보신 분은 어떤 챕터가 제일 소름이었는지 댓글로 알려주시면 반갑겠습니다.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1dlWjbLfm1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