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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영화는 단순하고 예측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많으실 텐데, 제가 직접 봐보니 그 생각이 보기 좋게 틀렸습니다. 게임기를 손에 넣은 꼬마 셋이 TV 비밀번호 하나 때문에 산속까지 흘러 들어가는 이야기, '달걀 원정대'입니다. 제목에서 달걀이 왜 원정대가 됐는지는 끝까지 봐도 서글프지만, 영화 자체는 서글프지 않습니다. 재밌습니다.

 

어린이 모험 영화는 어른이 봐야 더 재밌다는 게 사실일까

일반적으로 어린이 모험 영화는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보호자용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제가 혼자 보러 갔다가 그 편견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오히려 어른이 더 오래 웃었습니다.

영화의 출발점은 단순합니다. 동네에서 소문난 꼬마 세 명, 앨리스, 헤이즐, 조디가 갖고 싶던 비디오 게임기를 드디어 손에 넣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게임기가 아니라 TV였습니다. 엄마가 화면에 자녀 잠금, 즉 비밀번호를 걸어놨습니다. 여기서 자녀 잠금이란 부모가 콘텐츠 이용 시간이나 채널을 제한하기 위해 기기에 설정하는 접근 제어 기능을 뜻합니다. 요즘은 당연한 육아 도구처럼 쓰이지만, 저도 어릴 적엔 리모컨을 쥔 아빠가 집안의 왕이던 시절을 알고 있어서, 그 상황이 남 일 같지 않았습니다.

엄마의 조건은 딱 하나입니다. 몸이 아픈데 어릴 때 할머니가 해주던 블루베리 파이를 만들어오면 비밀번호를 알려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파이 하나에 비밀번호 하나. 협상 구조가 완벽합니다. 제가 애들 키울 때 리모컨 시간을 두 시간으로 제한하면서 이런저런 조건을 붙이고 다녔던 기억이 났는데, 보면서 솔직히 좀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 주인공 꼬마 셋: 앨리스, 헤이즐, 조디
  • 목표: TV 비밀번호 획득 → 블루베리 파이 재료 조달
  • 장르: 어린이 모험 / 아날로그 감성 성장 영화
  • 원제: Riddle of Fire (불의 수수께끼)
  • 감독: 웨스턴 라줄리 첫 장편 연출작
요약: 어린이 영화라서 가볍겠지 싶었는데, 오히려 어른이 더 많이 웃게 되는 구조였습니다.

 

칸 영화제 감독주간이 선택한 이유, 직접 확인해봤습니다

칸 영화제 감독주간(Directors' Fortnight)은 기성 심사위원단이 아닌 감독조합이 직접 큐레이션하는 부문입니다. 쉽게 말해 감독들이 "이 작품은 우리가 봐야 한다"고 판단한 작품들이 모이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 웨스턴 라줄리의 첫 장편이 불려갔다는 것 자체가 이미 신호였습니다.

'달걀 원정대'의 원제는 Riddle of Fire입니다. 미국에서 2023년 개봉해 좋은 반응을 얻은 작품이 국내에는 2025년 4월 29일에야 도착했습니다. 2년의 시차가 있었는데, 제 경험상 이렇게 늦게 들어오는 작품들이 오히려 묻혀 있던 보석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영화의 촬영 방식도 일반적인 기대와 달랐습니다. 요즘 아이들 영화는 선명하고 채도 높은 디지털 화면이 기본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이 영화는 필름 그레인(film grain)을 살렸습니다. 필름 그레인이란 실제 필름 촬영 시 빛이 화학 입자에 반응하면서 생기는 거친 질감을 말하는데, 디지털 시대에 이걸 의도적으로 구현한다는 것은 70~80년대 어린이 모험 영화에 대한 오마주(hommage), 즉 선배 작품에 대한 존경의 표현임을 뜻합니다. 출처: 칸 국제영화제 공식 홈페이지

제가 직접 봤을 때 이 거친 입자감이 처음엔 낯설었습니다. 그런데 10분쯤 지나자 오히려 그쪽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색감도 따뜻한 황갈색 계열로 일관돼 있어서, 전체적으로 낡은 그림책을 펼쳐놓은 느낌이었습니다.

요약: 칸 감독주간 선정작답게 촬영 방식부터 달랐고, 필름 그레인과 따뜻한 색감이 만든 아날로그 감성은 제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강력했습니다.

 

아날로그 감성이 좋다는 말만 들었는데, 실제로 어떤 장면에서 그걸 느꼈나

아날로그 감성이라는 말은 요즘 너무 남발돼서 저도 처음엔 반쯤 걸렀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 말이 정확히 들어맞는 경우였습니다.

반점이 있는 특별한 달걀을 구하러 나선 아이들은 시장에서 덩치 좋은 아저씨한테 달걀을 빼앗기고, 그 아저씨를 쫓아가다가 결국 짐칸에 실려 산속까지 끌려 들어갑니다. 거기서 아이들끼리 나누는 대사가 있습니다. 납치를 당했는데, 납치범이 자기들을 납치한다는 걸 모른다면 그건 납치인가 아닌가. 이 대화에서 저는 예상 밖으로 빵 터졌습니다. 어른이 쓴 아이들 대사가 아니라 진짜 아이들이 그 상황에서 할 법한 말이었습니다.

영화의 꽃은 중반에 등장하는 꼬마 페탈입니다. 엄마 몰래 짐칸에 숨어 탄 이 애는 자칭 불의 요정이라 소개하다가, 몇 마디 만에 아니 그냥 공주님이라고 스스로 정정합니다.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 즉 인물이 이야기 안에서 변화하고 성장하는 궤적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페탈은 분량은 짧아도 가장 완성된 캐릭터였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조연이 주연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마지막으로 결말 직전, 달걀이 어떻게 됐는지는 스포가 되니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다만 파이를 만들려면 달걀이 있어야 하는데 그 달걀이 없어지는 경위가 매우 허무하면서도 완벽하게 아이다운 방식이라는 것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영화가 끝나고 집에 와서 계란부침 두 장을 해 먹었습니다. 보고 나면 이 마음이 이해가 될 겁니다. 아동 영화에서 관객의 식욕을 자극한다는 건 어지간한 연출력이 아니고는 나오기 어려운 결과입니다. 출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

요약: 아날로그 감성이라는 수식어가 이 영화에서는 빈말이 아니었고, 특히 페탈이라는 조연 캐릭터가 영화 전체를 살려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달걀 원정대 원제가 따로 있나요?

A. 원제는 Riddle of Fire, 우리말로 하면 '불의 수수께끼'입니다. 국내 배급사가 이야기의 핵심 소재인 달걀을 전면에 내세워 '달걀 원정대'로 현지화했습니다. 제가 처음 제목을 봤을 때 멘데 싶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는 이 제목이 나름 영리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칸 영화제 감독주간이 정확히 어떤 부문인가요?

A. 감독주간(Directors' Fortnight)은 칸 영화제의 공식 경쟁 부문과는 별개로, 프랑스 감독조합이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비경쟁 섹션입니다. 흔히 신인 감독의 실험적 작품이나 주류 흐름과 다른 독창적 작품이 선정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비경쟁 부문은 주목도가 낮다고 알려져 있지만, 저는 오히려 이 부문 선정작들이 상업적 계산 없이 만든 영화일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Q. 아이들과 함께 봐도 되는 영화인가요?

A. 초등학생 이상이면 충분히 함께 볼 수 있습니다. 폭력이나 자극적인 장면 없이 모험 서사만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기 때문입니다. 제 경우엔 혼자 봤는데, 자녀와 함께 갔다면 서로 다른 장면에서 웃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른과 아이가 다른 지점에서 재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도 이 영화의 강점입니다.

 

Q. 영화 분위기가 특이하다고 하던데 어떤 느낌인가요?

A. 필름 그레인을 살린 거친 화면 질감에 따뜻한 황갈색 색감, 그리고 70~80년대 스타일의 음악이 결합돼 있습니다.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데 화면은 옛날 영화 같은 오마주 스타일이라, 처음엔 낯설지만 익숙해지면 오히려 그 분위기가 영화의 동화적 세계관을 완성시킨다는 느낌입니다. 저는 보는 내내 오래된 그림책 안에 들어간 것 같았습니다.

 

결론

정리하면, '달걀 원정대'는 어린이 영화는 단순하다는 전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조용히 깨는 영화입니다. 이야기 구조는 단순한데 그 안에 담긴 캐릭터의 밀도가 높고, 아날로그 감성의 촬영 방식은 영화 전체에 일관된 온도를 유지시킵니다. 제가 직접 봐봤는데, 두 번 볼 만한 영화라는 판단에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자식을 키워보신 분이라면 엄마의 파이 협상에서 웃음이 나올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순수 모험물로서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 단, 보러 가시기 전에 달걀 요리는 미리 드시고 가시길 권합니다. 제 경우엔 영화 끝나고 나서야 계란부침으로 해결했는데, 상영 중에 배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NbdKxyPxdy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