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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스타는 지난주 평일 밤에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다시 본 영화입니다. 개봉 당시 극장에서 봤으니 이십 년 만입니다. 그때는 친구들과 여럿이 봤습니다. 노래가 좋다는 기억뿐이었는데, 이번에는 두 남자의 나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도 회사에서 한때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고, 지금은 그 시절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조심스러운 자리에 있습니다. 올해 개봉 이십 주년을 맞아 특별상영 소식도 들렸습니다. 이 글에서는 무대에서 밀려난 가수와 그를 지킨 매니저, 그리고 노래가 사람을 다시 세우는 순간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무대에서 밀려난 두 사람
주인공은 팔십 년대에 가수왕까지 올랐던 남자입니다. 히트곡 하나로 이름을 얻었고, 그 뒤로는 내려오기만 했습니다. 지금은 술과 사고로 기사에 오르는 쪽이 익숙합니다. 그를 수습하는 사람은 오래된 매니저입니다. 사고 수습금을 마련한 사람도 그입니다. 결국 그는 지방 방송국의 진행자 자리를 받아 시골로 내려갑니다. 영월은 작은 도시이고, 방송국은 건물 하나에 들어 있습니다. 서울에서의 생활은 정리되지 않은 채로 남겨집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매니저는 형처럼 굴고, 때로는 부모처럼 잔소리를 합니다. 가수는 그 고마움을 말로 하지 않습니다. 대신 짜증을 내고, 무시하고, 곁에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그런데 그가 없는 자리에서는 어색해합니다. 가수는 매니저의 나이를 신경 쓰지 않고 부립니다. 매니저는 그걸 다 받습니다. 이 관계의 결이 이 영화의 절반을 떠받칩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제 회사 생활이 떠올랐습니다. 한때 잘나가던 시절이 지나고 나면 주변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그 변화를 견디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아직 견디지 못합니다. 아내는 이런 남자가 주변에 있다며 웃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남자를 끝까지 챙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이 영화의 위안입니다. 저는 웃지 못했습니다. 그 시절을 잊고 싶은 사람과 잊지 않으려는 사람이 함께 있다는 설정이 좋습니다.
노래가 사람을 일으키는 순간
작은 방송국에는 사람이 몇 명 없습니다. 지역 밴드, 기사, 국장, 작가. 처음에 그는 대본을 읽는 것도 어색해합니다. 준비된 멘트가 입에 붙지 않습니다. 그러다 준비한 대본을 버리고 자기 방식으로 말하기 시작합니다. 사연을 읽고, 농담을 섞고, 노래를 겁니다. 그 즉흥적인 진행이 사람들을 움직입니다. 방송이 끝나면 거리에서 사람들이 알아봅니다. 그는 그 반응을 겉으로는 시큰둥하게 넘깁니다.
음악이 이 영화의 뼈대입니다. 노래 한 곡이 사람 하나를 일으키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옵니다. 그 장면들은 대사보다 오래 남습니다.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짧습니다. 짧아서 더 남습니다. 두 배우의 연기도 서로를 받쳐 줍니다. 한 사람이 크게 흔들릴 때 다른 한 사람이 조용히 버팁니다. 그해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두 사람이 함께 받은 것도 그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후반부의 갈등이 조금 매끄럽게 풀립니다. 사연들도 실제보다 정돈된 느낌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큐멘터리 같은 질감을 기대하면 어긋납니다. 지역 사람들의 사연이 감정의 재료로만 쓰이지 않는 점은 좋았습니다. 그래도 인물을 향한 시선은 따뜻합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영화가 조금 더 지저분해도 좋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도 방송실 장면만으로 값은 충분합니다.
흥행보다 오래 남은 노래
성적은 크지 않았습니다. 최종 관객은 백팔십칠만 명 정도였고, 손익분기점이 백육십오만 명이었으니 간신히 넘긴 셈입니다. 개봉 초반에는 순위가 높지 않았습니다. 입소문이 붙으면서 오래 상영된 작품입니다. 그해 큰 성공을 거둔 작품들과 비교하면 초라한 숫자입니다. 당시에는 대형 배급이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상영관도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노래는 남았습니다. 영화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도 그 노래는 압니다. 이십 년이 지나 특별상영이 열린다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겁니다. 흥행 성적과 작품의 수명은 별개라는 것을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그 점이 가장 부러웠습니다. 오래된 노래 하나가 사람을 계속 살려 두는 셈입니다. 그 노래를 다시 들으면 영화의 한 장면이 먼저 떠오릅니다.
제 점수는 다섯 개 중 네 개 반입니다. 갈등이 매끄럽게 정리되는 부분은 아쉽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두 번 볼 만합니다. 처음 볼 때는 노래를 듣고, 두 번째에는 두 남자의 표정을 보게 됩니다. 저는 후자를 더 좋아합니다.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결말이 아니라 그 앞의 시간들입니다. 아내에게도 다음 주에 함께 보자고 했습니다.
라디오 스타는 내려앉은 사람이 다시 올라가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오래된 동료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회사에서 한 번쯤 밀려난 경험이 있는 50대 중년의 직장인이라면 권할 만합니다. 노래로 마음을 정리하는 분에게도 잘 맞습니다. 반대로 사건이 빠르게 몰아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에게는 권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이십 년 만에 다시 봤고, 그사이 제가 변한 만큼 다르게 읽혔습니다. 노래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사운드트랙만으로도 값을 합니다. 다음에는 극장에서 다시 보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