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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은 제가 극장에서 놓친 영화입니다. 개봉한 2014년 여름은 회사 일이 가장 바빴던 시기라, 주변에서 천만 관객 이야기를 할 때도 저는 야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뒤 명절 연휴 마지막 날 밤에 거실 소파에서 혼자 재생 버튼을 눌렀습니다. 늦은 시각이라 두 시간 남짓이 부담스러웠는데, 배가 화면을 채우는 장면부터는 자세를 고쳐 앉게 되더군요. 제가 사극을 좋아하는 이유는 결국 사람 이야기이기 때문인데, 이 작품은 바로 그 지점에서 갈렸습니다. 저는 볼거리보다 인물의 감정선을 먼저 보는 편이라, 배가 부서지는 장면보다 사람들이 결단을 내리는 순간을 더 오래 기억합니다. 이 글에서는 바다 위에서 벌어진 그 싸움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그리고 관객의 반응과 평론의 시선이 왜 엇갈렸는지를 제 기준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열두 척 앞에 놓인 바다

이야기는 절망적인 숫자에서 출발합니다. 1597년, 조선 수군은 거의 남지 않았고 장수가 손에 쥔 배는 열두 척뿐이었습니다. 반대편에는 삼백 척이 넘는 적선이 바다를 메우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조정은 그를 다시 바다로 내보내라는 명을 내린 상태였습니다. 남은 배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는 물음이 첫 장면부터 따라붙습니다. 극은 이 불리함을 감추지 않고 오히려 정면으로 밀어붙입니다.

무대가 되는 곳은 울돌목의 좁은 물길입니다. 배를 나란히 댈 수 없을 만큼 폭이 좁고 물살이 셉니다. 그래서 이 싸움은 수의 문제가 아니라 지형과 타이밍의 문제로 바뀝니다. 적은 배가 많아서 오히려 움직이기 어려웠고, 조선 수군은 그 좁은 길을 이용했습니다. 적은 수를 감추는 대신 약점을 지형으로 메우는 구도가 이 작품의 출발점입니다. 배의 수를 줄이는 대신 관객의 긴장을 늘리는 선택이었습니다.

제 경우에는 전투 장면보다 사람들이 모여 결정을 내리는 장면을 더 재미있게 봅니다. 그래서 배가 부서지는 대목보다, 남은 장수들이 모여 앉아 서로 눈치를 보는 장면에서 더 긴장했습니다. 무거운 책임을 떠안고 답을 내리는 순간은 회사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아내가 옆에서 "또 그런 생각하는 거 아니냐"라고 했는데, 맞는 말이었습니다. 그날 밤에는 잠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승부를 가른 것은 배가 아니었다

연출은 바다를 넓게 보여주지 않습니다. 카메라는 배 위에 바짝 붙어 갑판과 노를 잡은 손을 비춥니다. 물안개와 흔들림이 화면을 가득 채워서, 보는 사람은 지휘관의 시야로 싸움을 따라가게 됩니다. 장수를 연기한 배우는 대사를 아끼고 눈과 어깨로 감정을 옮깁니다. 말수가 적은 사람이 명령을 내리는 장면에서 저는 오히려 소름이 돋더군요.

적장으로 나오는 배우도 인상적입니다. 두 사람이 정면으로 부딪히는 구도는 영화적인 장치이지만, 카리스마만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서로의 계산이 드러나게 연기합니다. 소리가 화면보다 먼저 긴장을 만드는 구성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북소리가 깔리는 대목에서는 리모컨을 만질 생각이 나지 않더군요. 저는 그 장면에서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다만 아쉬운 부분도 분명했습니다. 실제 전투와 다른 각색이 몇 군데 눈에 걸립니다. 진형을 다루는 장면이나 적장과의 대결 구도는 극적인 재미를 위해 손본 흔적이 역력합니다. 실화를 표방한 작품이라면 이 지점은 지적을 피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그 장면에서 잠깐 몰입이 끊겼습니다. 기대가 컸던 만큼 그 몇 분이 유독 크게 느껴졌습니다.

천만 관객과 비평가의 서로 다른 시선

성적은 더 말할 것이 없습니다. 이 영화는 최종적으로 천칠백육십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아 한국 영화 흥행 순위의 가장 앞자리에 올랐습니다. 개봉한 지 열여드레 만에 그때까지 1위였던 외화의 기록을 넘어섰다는 점도 기억에 남습니다. 손익분기점을 훌쩍 넘긴 뒤에도 극장이 꽉 차 있었다는 이야기가 들렸습니다. 같은 영화를 두 번, 세 번 본 사람이 많았다는 후기도 그때 자주 들었습니다.

비평가들의 시선은 조금 달랐습니다. 연출과 배우의 힘은 인정하면서도, 사실과 어긋나는 각색과 과장된 연출을 문제 삼는 평이 적지 않았습니다.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당시 비평가 점수와 관객 평점의 간격이 꽤 벌어져 있었습니다. 저는 두 평가가 모두 이해가 갑니다. 평이 갈릴 때는 대체로 양쪽 모두 이유가 있다고 보는 편입니다. 큰 흥행과 작품의 완성도가 늘 같은 방향을 가리키지는 않는다는 점을 이 영화가 잘 보여줬습니다.

제 점수는 다섯 개 중 네 개입니다. 배우의 연기와 소리, 그리고 좁은 바다를 활용한 구성은 값을 합니다. 다만 사실에 기대는 관객이라면 아쉬운 대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저처럼 늦게 보는 사람은 이 부분을 미리 알고 보면 실망이 적겠습니다. 아내는 전투 장면이 길다고 했는데, 저는 오히려 짧게 느껴졌습니다.

명량은 왜 그때 극장에 가지 않았을까 하고 아쉬워워한 몇 안 되는 영화입니다. 큰 화면과 좋은 음향으로 봤다면 마지막 장면의 울림이 훨씬 컸을 것 같습니다. 역사 이야기를 좋아하는 마흔에서 쉰 사이의 직장인이라면 부담 없이 권할 만합니다. 반대로 정통 사극의 고증을 기대하거나 쉬지 않고 몰아치는 액션을 원하는 분에게는 중간중간 늘어지는 대목이 걸릴 수 있습니다. 저는 끝나고 나서 한동안 거실 불을 켜지 않고 앉아 있었습니다. 다음 연휴에는 아내와 다시 볼 생각입니다. 다시 볼 때는 이번에 놓친 대목을 더 자세히 보려고 합니다. 큰 화면으로 못 본 것이 아직도 두고두고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