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빅 피시는 지난 일요일 오후, 아내가 장을 보러 나간 사이 거실에서 혼자 본 영화입니다. 십 년도 더 전에 한 번 봤는데, 그때는 앞부분의 기이한 장면들만 기억에 남아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중반부터 화면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저는 아버지와 대화가 많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아버지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이야기에 마음이 갔습니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와 지금의 차이는 제가 아버지 쪽에 가까워졌다는 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평생 과장된 이야기를 해 온 아버지와 그 이야기를 믿지 못하는 아들, 그리고 사실과 허구가 어긋나는 자리에서 남는 것들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아버지가 남긴 이야기들
아들은 오래 연락하지 않던 아버지의 병상으로 돌아옵니다. 아버지는 몸이 좋지 않은 지 오래입니다. 두 사람 사이는 편하지 않습니다. 아들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이야기를 의심해 왔습니다. 아버지는 평생 자기가 겪은 일을 부풀려서 말해 온 사람입니다. 아들은 그 이야기 중에 무엇이 사실인지 알고 싶어 합니다. 병실 창밖은 조용하고 대화는 금방 끊깁니다.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시간이 길다는 것이 장면마다 느껴집니다.
이야기 속에는 거인과 늑대인간, 서커스 단장과 이상한 마을이 등장합니다. 아버지가 젊은 시절 집을 떠나 겪었다는 일들입니다. 에피소드마다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아들은 그 허점을 하나씩 찾아내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을수록 허점을 찾는 일이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도 흥미롭습니다. 아버지는 끝을 정해 두지 않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저도 비슷한 기억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이야기를 하실 때 숫자를 조금씩 부풀리곤 하셨습니다. 그때는 왜 저렇게 말씀하실까 싶었습니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말들이 지금은 들립니다. 지금은 그 마음이 조금 이해됩니다. 아내는 이 영화를 보면서 자기 아버지를 떠올렸다고 했습니다. 두 사람 다 말없이 화면을 봤습니다.
사실과 이야기 사이
이 작품은 두 개의 시간대를 오갑니다. 아들의 현재는 색이 빠져 있고, 아버지의 젊은 시절은 색이 짙습니다. 이 대비가 영화의 문법입니다. 현실은 건조하고, 이야기는 화려합니다. 그래서 어느 쪽이 진짜인지 자꾸 따져 보게 됩니다. 화면은 그 질문을 붙잡아 두지 않고 계속 넘어갑니다. 아들이 병실에 앉아 있을 때는 소리도 작고 사람도 적습니다. 반대로 이야기 속에는 사람이 가득합니다.
연출은 의외로 따뜻합니다. 팀 버튼 감독의 다른 작품에서 느껴지는 기괴함이 이 영화에서는 온기 쪽으로 기울어 있습니다. 등장인물은 하나같이 이상하지만 무섭지 않습니다. 젊은 시절의 아버지를 연기한 배우의 표정도 좋습니다. 늙은 아버지를 맡은 배우는 그 표정을 기억하는 사람처럼 연기합니다. 의상과 미술도 과하지 않습니다. 이상한 세계인데 어딘가 익숙합니다.
다만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중반의 에피소드가 조금 늘어집니다. 하나를 지워도 이야기가 굴러갈 것 같은 대목이 두세 군데 있습니다. 음악이 감정을 앞질러 가는 순간도 있습니다. 저는 몇 장면에서 흐름이 길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도 인물을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그 느림이 이 영화의 호흡이기도 합니다. 서두르지 않기 때문에 마지막 장면이 살아납니다.
마지막 이야기를 잇는 사람
마지막에 아들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자기 입으로 이어 갑니다. 그 장면에서 저는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방식을 받아들이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어도 사람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장면이 보여 줍니다. 아버지가 만들어 둔 세계에 아들이 마지막 문장을 붙이는 셈입니다. 그 대목에서 관객은 아들과 같은 자리에 서게 됩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 이십 년이 걸린 셈입니다.
이 영화를 두 번째로 보면서 생각이 달라진 지점이 있습니다. 처음 볼 때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재미있는 장식이라고 봤습니다. 이번에는 그 이야기가 아들을 향한 설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로는 하지 못했던 것을 이야기로 남긴 것입니다. 이야기를 물려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 장면에서 알게 됩니다. 그래서 결말이 슬프면서도 편안합니다.
점수를 매기기 어려운 작품이지만 굳이 매기자면 다섯 개 중 네 개 반입니다. 에피소드가 늘어지는 부분은 감안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두 번 볼 가치가 있습니다. 저는 나이에 따라 다르게 읽히는 영화를 좋아합니다. 이 영화가 그렇습니다. 아내에게도 내년에 한 번 더 보자고 했습니다.
빅 피쉬는 아버지를 이해하는 데 실패한 아들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다음 날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전화에 익숙하지 않아서 1분간의 안부대화가 전부였습니다. 이야기할 별다른 내용이 없다는 것이 참으로 슬펐습니다 이영화는 판타지보다 가족 서사를 먼저 보고 싶은 분에게 특히 맞습니다. 반대로 사건이 빠르게 몰아치고 결말이 단호한 작품을 좋아하는 분에게는 권하지 않습니다. 이야기의 힘을 믿는 분이라면 끝까지 남는 장면이 있을 겁니다. 저는 이 영화를 두 번 봤고, 아마 세 번째도 보게 될 것 같습니다. 다음에 아이가 이 영화를 보면 어떤 이야기를 할지 궁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