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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는 지난 일요일 저녁, 아이가 숙제를 하는 동안 이어폰을 끼고 본 영화입니다. 처음 본 것은 개봉한 해 겨울이었습니다. 그때는 3D 안경을 쓰고 두 시간 넘게 앉아 있었던 기억만 남아 있습니다. 이번에는 안경 없이 작은 화면으로 봤는데도 앞부분이 훨씬 길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회사에서 새 시스템을 처음 접할 때의 어색함을 떠올렸습니다. 익숙해지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이 영화의 앞부분이 아주 잘 보여 줍니다. 이 글에서는 다른 몸으로 옮겨 간 사람이 걷는 법을 배우는 과정, 아름다운 곳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이 작품이 남긴 기록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다른 몸으로 걷는 법
주인공은 다리를 쓰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지원한 일은 다른 몸에 의식을 옮기는 실험입니다. 처음 누워 있는 장면에서 그는 자기가 무엇을 하게 될지 정확히 모릅니다. 막상 눈을 떠 보니 몸이 훨씬 크고 발이 낯섭니다. 그가 처음 걷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유쾌한 대목입니다. 발을 내딛는 동작이 어린아이와 비슷합니다.
걷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 길게 그려집니다. 뛰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납니다. 이 장면이 중요한 이유는 그가 처음으로 자기 몸을 즐기기 때문입니다. 오래 잃고 있던 감각을 되찾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출발점은 모험이 아니라 회복입니다. 이 설정 하나가 뒤의 모든 장면을 받쳐 줍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아버지가 재활하시던 시절을 떠올렸습니다. 혼자 서는 데까지 두 달이 걸렸습니다. 그때 아버지의 표정을 저는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화면 속 인물이 처음 걸을 때 웃는 얼굴을 보면서 그 표정이 떠올랐습니다. 아내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한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그날 저녁에는 아버지께 안부 전화를 드렸습니다.
몸에 익숙해지는 속도가 이 영화의 리듬입니다. 앞부분이 느린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관객이 인물과 같은 속도로 그 세계를 배우게 하려는 설계입니다. 그래서 중반 이후의 장면들이 갑자기 가까워집니다. 낯선 세계가 어느 순간 익숙한 동네처럼 느껴집니다.
아름다운 곳을 대하는 태도
이 작품의 배경은 상상의 위성입니다. 밤이 되면 숲 전체가 빛을 냅니다. 물가에는 낮은 소리가 흐르고, 나무 위에는 집이 걸려 있습니다. 미술과 색감이 이 영화의 절반을 떠받칩니다. 조명 하나하나가 의도적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작은 화면으로 봐도 그 정성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자연을 소유하지 않습니다. 빌리고, 돌려주고, 감사하는 방식으로 살아갑니다. 반대로 들어온 사람들은 자원을 캐내려 합니다. 이 대비가 이야기의 갈등입니다. 다만 이 갈등이 지나치게 단순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저도 그 점에 일부 동의합니다. 다만 이야기의 목적이 갈등 해결에 있지 않다고 보면 이해가 됩니다.
그래도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분명합니다. 아름다운 것을 처음 봤을 때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입니다. 감탄하는 쪽과 계산하는 쪽으로 갈립니다. 주인공은 그 사이에서 흔들립니다. 그 흔들림이 이 영화의 가장 정직한 부분입니다. 결론을 서두르지 않기 때문에 오래 남습니다.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인물들의 성격이 역할에 맞춰 정리되어 있습니다. 선한 쪽과 악한 쪽의 구분이 선명해서 긴장이 덜합니다. 대사도 설명에 기대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화면이 워낙 강해서 이야기의 얕음을 잊게 됩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볼 때 대사를 거의 듣지 않았습니다. 화면이 먼저 말을 걸어왔기 때문입니다.
천만 관객이 남긴 것
국내 기록은 외화로서 뜻이 깊습니다. 2009년 겨울에 개봉해 외화 가운데 처음으로 천만 관객을 넘었습니다. 최종 수치는 집계 시점에 따라 천삼백만에서 천삼백삼십만 사이로 기록됩니다. 관람 등급은 12세였습니다. 상영 시간은 두 시간이 넘습니다.
해외에서도 기술 부문의 평가가 두드러졌습니다. 아카데미에서 여러 부문 후보에 올랐고, 촬영과 미술 같은 기술 부문에서 상을 받은 것으로 기억합니다. 정확한 부문은 자신이 없어 단정하지 않겠습니다. 확실한 것은 이 작품이 화면을 만드는 방식의 기준을 바꿨다는 점입니다.
그 뒤로 3D 영화가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이만큼 정교한 작품은 드물었습니다. 기술을 먼저 만들고 이야기를 나중에 붙인 작품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반대 순서였습니다. 그래서 십칠 년이 지나도 화면이 촌스럽지 않습니다. 지금 다시 봐도 손색이 없습니다.
인물의 성격이 단순한 점은 아쉽습니다. 그런데도 이 작품은 큰 화면으로 다시 볼 만합니다. 저는 이번에 처음으로 숲의 빛을 눈여겨봤습니다. 처음 볼 때는 이야기만 따라갔는데, 지금은 배경을 봅니다. 보는 방식이 달라진 것이 신기했습니다.
아바타는 다른 몸으로 옮겨 간 사람이 세상을 다시 배우는 이야기입니다. 현실에선 있을수 없는 일이지만 영화라는 장르는 그 무엇도 가능하게 하는 마법과도 같은 세계에서는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의 힘은 얼굴보다 공간에 있습니다. 다음에는 큰 화면으로 다시 보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