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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는 지난 수요일 밤, 아내가 먼저 잠든 뒤 거실에서 본 영화입니다. 십 년도 더 전에 한 번 봤습니다. 그때는 노래만 기억에 남았습니다. 이번에는 화면의 질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손으로 들고 찍은 것처럼 흔들리고, 조명도 정돈되지 않았습니다. 그 투박함이 오히려 편안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더블린 거리에서 만난 두 사람이 함께 노래를 만드는 과정, 노래가 말을 대신하는 방식, 그리고 이 작품이 남긴 숫자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거리에서 만난 두 사람

남자는 거리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낮에는 가게에서 청소기를 고치는 일을 합니다. 밤에는 사람이 지나가는 자리에서 기타를 칩니다. 악기 케이스를 펴 놓고, 그 안에 모인 동전이 그날의 수입입니다. 지나가는 사람은 거의 멈추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는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에 섭니다. 그 반복이 이 영화의 첫 장면을 만듭니다. 그래도 그는 매일 같은 자리에 섭니다. 그 장면만으로도 이 사람이 무엇을 붙잡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여자는 꽃을 팔며 그 앞을 지나다가 노래를 듣습니다. 두 사람은 그날 처음 이야기를 나눕니다. 대화는 어색하고 짧습니다. 서로의 사정을 캐묻지 않습니다. 대신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만 알아 갑니다. 영화는 두 사람의 이름을 끝까지 말하지 않습니다. 남자와 여자로만 남겨 둡니다. 그 익명성이 이 작품의 태도입니다. 이름을 붙이는 순간 이야기가 다른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이어폰을 끼고 있던 시절을 떠올렸습니다. 그때는 누군가와 말을 섞는 일이 번거로웠습니다. 지금은 반대입니다. 낯선 사람과 나누는 짧은 대화가 하루를 버티게 할 때가 있습니다. 아내는 이 영화를 보면서 내가 그런 대화를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맞는 말이었습니다.

노래가 대화가 되는 방식

두 사람이 함께 노래를 만들면서 관계가 달라집니다. 악보를 주고받고, 가사를 고치고, 목소리를 맞춥니다. 이 과정에서 감정이 드러납니다. 말로는 하지 않던 이야기가 가사에 섞여 나옵니다. 영화는 그 장면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냥 노래를 들려줍니다. 해석을 붙이지 않아도 감정은 전달됩니다. 그래서 관객도 말 대신 노래를 듣게 됩니다.

녹음실 장면이 이 영화의 정점입니다. 좁은 방에 사람이 여럿 들어가고, 마이크 하나를 나눠 씁니다. 짧은 시간을 빌려 몇 곡을 한 번에 녹음합니다. 연주가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살아 있습니다. 한 번에 끝내야 하는 녹음이라 긴장이 소리로 남습니다. 헤드폰을 쓴 두 사람의 표정이 음악과 함께 움직입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리모컨을 멈추고 한 번 더 재생했습니다. 노래가 장면을 이끄는 게 아니라, 장면이 노래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곡을 따로 들어도 영화의 공기가 남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카메라가 흔들리는 화면이 오래 이어져서 눈이 피로할 수 있습니다. 처음 보는 분은 일부러 가까이서 찍은 화면이라는 것을 모를 수도 있습니다. 이야기의 결말도 단호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어떻게 되었다고 정리해 주지 않습니다. 저는 그 모호함이 좋았지만, 결말을 확실히 알고 싶은 분에게는 답답할 겁니다. 저도 처음 볼 때는 그 점이 아쉬웠습니다.

이십이만 관객과 십삼만 유로

제작비는 십삼만 유로 정도였습니다. 우리 돈으로 억대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배우들도 실제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대사보다 연주를 먼저 익힌 사람들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연주 장면에 거짓이 없습니다. 손가락이 실제로 움직이고, 목소리도 그 사람의 것입니다. 이 점이 이 영화를 다른 음악 영화와 갈라놓습니다. 노래를 잘 부르는 배우가 아니라, 노래하는 사람을 찍었습니다.

국내 성적도 의미가 있습니다. 최종 관객은 이십이만 명을 넘었습니다. 상영관이 열 곳 남짓이던 작품이 이만큼 모은 것입니다. 당시 독립영화 가운데 이례적인 기록이었습니다. 상영관이 적어서 표를 구하기 어려웠다는 기사도 있었습니다. 입소문이 만든 숫자라는 점에서 더 값집니다. 저는 그 숫자를 보고 관객이 작품을 어떻게 찾아내는지 생각했습니다. 광고가 아니라 사람의 말이 만든 결과입니다.

제 점수는 다섯 개 중 네 개 반입니다. 흔들리는 화면과 단호하지 않은 결말은 호불호가 갈릴 부분입니다. 그런데도 이 작품은 여러 번 볼 만합니다. 볼 때마다 다른 노래가 남습니다. 처음에는 거리에서 부르던 곡, 두 번째에는 녹음실 곡이 남았습니다. 세 번째에는 아마 두 사람이 마주 보던 표정이 남을 겁니다. 이번에는 녹음실에서 부르던 곡이 오래 남았습니다. 아내에게도 다음 주에 함께 보자고 했습니다.

원스는 이름 없는 두 사람이 노래로 대화한 기록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오래 묵혀 둔 기타를 꺼냈습니다. 말보다 노래가 편한 순간이 있는 정서적인 사람이라면 권할 만합니다. 음악 영화를 좋아하는 분, 전체 관람가 작품을 찾는 분에게도 잘 맞습니다. 반대로 사건이 분명하게 정리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에게는 권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가 웃는 얼굴이 오래 남습니다. 다음에는 이 감독의 다른 작품도 찾아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