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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만의 후속작이라고 하면 보통 기대보다 실망이 먼저 옵니다. 그런데 영화 <짱구>는 달랐습니다. 오디션에 백 번 넘게 떨어진 20대 이야기를 50대가 극장에서 보고 나오면서 등이 뜨거워졌다면, 이 영화는 뭔가 제대로 된 것입니다. 제가 직접 보고 온 후기를 솔직하게 씁니다.

버티는 청춘 — 오디션 100번의 무게
꿈을 이루는 이야기가 감동적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이 영화는 처음부터 그 기대를 내려놓게 만듭니다. <짱구>는 꿈을 이루는 이야기가 아니라 꿈을 붙들고 버티는 이야기입니다. 그 차이가 생각보다 큽니다.
주인공 김정국, 별명 짱구는 부산 출신으로 서울에 올라와 배우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누아르 영화 오디션 현장에 88번 번호표를 들고 등장합니다. 오디션(audition)이란 배우나 가수 지망생이 제작진 앞에서 실기를 직접 선보이는 심사 과정을 말합니다. 짱구에게는 이 과정이 이미 백 번을 넘겼습니다. 대사를 까먹고, 상체를 드러낸 몸은 기대와 달리 근육 하나 없이 어설프고, 심사위원들은 냉담합니다.
제가 이 장면을 보면서 처음엔 웃었습니다. 그런데 웃음이 가시고 나니까 손이 저릿해졌습니다. 이건 배우 지망생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디서든 떨어져 본 사람의 이야기였습니다. 출처: 영화진흥위원회(KOFIC)에 따르면 국내에서 배우를 꿈꾸며 활동하는 연기 지망생은 매년 수만 명에 달하지만, 실제로 상업 영화에 이름을 올리는 경우는 극소수입니다. 짱구의 백 번이라는 숫자가 과장이 아닌 현실이라는 뜻입니다.
이 영화가 2009년작 <바람>의 후속작이라는 점도 짚어야 합니다. <바람>은 극장에서 크게 조명받지 못했지만, 10대 관객들 사이에서 구전(口傳)으로 퍼져나가 비공식 천만 영화라는 별칭을 얻은 작품입니다. 17년이 지나 그 짱구가 20대가 되어 돌아온 것입니다. 제가 처음 <바람>을 극장에서 봤을 때 서른 중반이었으니, 이제 그 영화의 후속작을 오십 대가 되어 보고 있다는 게 묘하게 시간의 무게를 실감하게 했습니다.
미니 — 마음을 흔든 여자, 그리고 남은 아쉬움
짱구가 에너지 충전을 위해 찾은 고향 부산에서 미니를 만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생동감이 넘치는 파트입니다. 클럽 분위기 속에서 등장한 미니는 짱구의 허술한 서울말을 단번에 꿰뚫고, 남자친구가 있다고 했다가 없다고 번복하고, 금방 전화한다고 해놓고 다음날 아침까지 연락이 없습니다. 이 캐릭터 하나로 극의 긴장감이 살아납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미니가 나오는 장면마다 관객석이 살아났습니다. 신차를 끌고 나타난 짱구가 미니 옆에 세우려는 순간 고급 수입차가 등장하고, 짱구가 조수석에 앉아 구겨지는 장면은 웃으면서도 어딘가 아팠습니다. 술을 못 마시면서 상남자처럼 보이려고 허세를 부리는 스물다섯 살의 풍경, 저도 그 나이에 비슷한 짓을 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걸리는 게 있었습니다. 미니라는 인물이 짱구의 감정을 흔들기 위한 서사적 장치(narrative device), 즉 이야기 구조 안에서 주인공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배치된 인물로만 기능한다는 점입니다. 미니가 뭘 원하는지, 어떻게 사는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남자 주인공의 청춘은 정성 들여 찍어주면서, 그 옆의 여성은 스쳐가는 존재로 소비되는 구조입니다. 17년 전 <바람>에서도 비슷한 방식이었는데, 그게 그대로 이어진 것이 솔직히 아쉬웠습니다.
이 점은 짚고 넘어가야 이 영화를 제대로 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니 역할이 가진 재미는 분명하지만, 그것이 곧 이 영화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오디션 현실 — 촌철살인 한 마디가 남긴 것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오래 머물렀던 장면은 오디션 탈락 직후의 대화였습니다. 심사위원이 짱구에게 묻습니다. "연기를 왜 하지? 잘생기지도 않았잖아. 그러면 연기력이 돼야 돼. 그전에 인간이 돼 있어야 된다." 짱구는 아는 척 네, 네를 반복하다가 결국 "사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라고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웃었는데, 웃고 나니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도 젊었을 때 누군가에게 비슷한 소리를 들었고, 이제는 제가 그 말을 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저부터 인간이 다 됐는지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영화는 이 장면을 감동으로 포장하지도, 웃음으로 넘기지도 않고 그냥 뒤에 두었습니다. 그 태도가 이 영화의 품격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전적 서사(autobiographical narrative)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는 창작자가 자신의 실제 경험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짱구>는 배우 정우가 감독, 각본, 주연을 모두 맡은 작품입니다. 신예 오성호 감독과 공동 연출을 했지만, 이야기의 뼈대는 정우 본인의 20대 시절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장면들이 연기처럼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실제로 겪은 사람이 재현한 감각이 다릅니다.
다만 이 자전적 서사라는 특성이 곧 이 영화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결국 버텨낸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오디션을 접은 사람, 처음부터 도전할 기회조차 없었던 사람, 버티다 지쳐 포기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화면 어디에도 없습니다. 20대 생존기라고 하지만 어느 방향의 20대인지는 분명합니다. 그 점은 이 영화가 가진 시각의 폭이기도 합니다.
- 오디션 현장 장면: 번호표 88번, 대사 실수, 어설픈 몸 공개 — 민낯 그대로를 찍어냅니다
- 심사위원의 한 마디: "인간이 돼 있어야 된다" — 배우 지망생이 아니어도 찔립니다
- 자전적 서사의 힘: 실제 경험이 바탕에 있어 연기임에도 연기처럼 보이지 않는 밀도가 있습니다
- 자전적 서사의 한계: 버텨낸 쪽의 이야기에만 머물러 있다는 점은 분명한 아쉬움입니다
이 영화를 누가 보면 좋을까 — 세대를 넘는 이유
처음엔 이게 20대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디션 얘기에 클럽 얘기에 술 허세까지, 저 같은 나이가 볼 이유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보고 나서 드는 생각은 달랐습니다. 이 영화는 20대가 보면 자기 이야기고, 40~50대가 보면 자기가 그 나이였을 때 이야기입니다. 떨어져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 등이 뜨거워질 구석이 있습니다.
상영 시간 95분은 짧은 편입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중반부에 에피소드가 이어 붙는 식으로 전개되다 보니 긴장이 느슨해지는 구간이 있었습니다. 전체를 하나의 힘으로 끌고 가는 서사적 구심력(narrative centripetal force), 즉 이야기가 흩어지지 않고 하나의 방향으로 관객을 당기는 에너지가 조금 약하다는 느낌은 솔직히 있었습니다. 그래도 95분이라 견딜 만했고, 정우가 감독까지 맡았다는 걸 엔딩에 알고 나면 납득이 됩니다.
출처: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KOBIS)에서 확인되는 <바람>의 누적 관객 수는 공식 집계 기준으로도 상당한 수치이며, 그 파급력은 당시 10대들 사이의 구전 마케팅(word-of-mouth marketing) 덕분이었습니다. 구전 마케팅이란 광고 없이 관객과 관객 사이의 입소문으로 작품이 확산되는 방식을 뜻합니다. <짱구>가 그 계보를 이을 수 있을지는 지금 극장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결정할 일입니다.
제 경험상 이 영화는 자식이나 조카, 후배에게 보라고 권하기 좋은 작품입니다. 잘난 척하는 결말도 없고, 눈물을 쥐어짜는 장치도 없습니다. 버티는 사람을 그냥 찍어서 보여줍니다. 그게 오히려 더 오래 남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짱구, 바람을 안 봐도 이해할 수 있나요?
A. 충분히 볼 수 있습니다. <바람>을 먼저 보면 짱구라는 인물에 대한 정서적 배경이 쌓여 더 풍부하게 즐길 수 있지만, 모르고 들어가도 이야기 이해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짱구가 어떤 사람인지 영화 안에서 충분히 소개됩니다.
Q. 코미디 영화인데 감동도 있나요?
A. 코미디라는 껍데기 안에 제법 묵직한 것이 들어 있습니다. 웃긴 장면에서 웃고, 웃음이 끝난 자리에서 뭔가 걸리는 느낌이 남습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가장 웃었던 장면이 나중에 가장 오래 남는 장면이 됐습니다. 억지로 눈물을 쥐어짜는 방식이 아니라서 오히려 뒤가 남습니다.
Q. 40~50대도 공감할 수 있는 영화인가요?
A. 제가 그 나이에 직접 보고 왔는데, 오히려 더 잘 통했습니다. 20대가 보면 지금 자기 이야기고, 그 위 세대가 보면 그때 자기 이야기입니다. 특히 "인간이 돼 있어야 된다"는 오디션 장면은 나이 든 쪽에서 보면 더 깊게 찔립니다.
Q. 영화 짱구 상영 시간이 어떻게 되나요?
A. 95분입니다. 짧은 편이라 부담 없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다만 에피소드가 이어지는 구성이라 중반에 호흡이 느슨해지는 구간은 있습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지루함 없이 볼 수 있는 분량입니다.
결론
영화 <짱구>는 꿈을 이룬 사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꿈을 내려놓지 못하고 버티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오십 대에 이 영화를 보고 등이 뜨거워진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잘 나가는 결말도 없고, 눈물을 짜내는 장치도 없습니다. 짱구의 스물다섯이 그냥 찍혀 나오고, 보는 사람이 거기서 자기를 찾는 방식입니다.
미니 캐릭터의 서사가 얕다는 점, 자전적 서사가 가진 시각의 한계, 중반 구성의 느슨함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도 이런 영화가 더 나왔으면 합니다. 아쉬운 점을 길게 쓴 건 다음 편이 나오면 또 보고 싶다는 뜻입니다. <바람>을 못 보신 분이라면 그것부터 보시고 오시는 것도 좋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