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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영화의 영웅은 총을 잘 쏘는 사람이어야 할까요? 2021년 8월, 프랑스 대사관 소령 모하메드 비다는 총 대신 명단과 협상으로 500명을 살렸습니다. 영화 '카불: 13일의 밤(원제: 13 Jours, 13 Nuits)'은 그 13일의 기록입니다. 저는 IPTV에서 이 영화를 봤는데, 실화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부터는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습니다.

 

실화는 예고편보다 무섭다 — 2021년 카불 함락의 실화배경

혹시 2021년 8월, 수송기 바퀴에 매달려 하늘로 올라가던 사람들 사진을 기억하십니까? 저는 그날 뉴스를 직장에서 봤는데, 9.11 테러 다음 날 아침과 같은 묘한 멍함이 있었습니다. 2001년에 시작된 전쟁이 20년 만에 저런 사진 한 장으로 끝났다는 게 그때는 실감이 안 났습니다.

영화의 배경이 된 사건은 이렇습니다. 미국이 20년 넘게 이어온 아프가니스탄 주둔을 끝내고 철군(撤軍)을 선언하자, 탈레반은 단 열흘 만에 수도 카불을 장악합니다. 여기서 탈레반이란 1990년대부터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해 온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 세력으로, 2001년 미군의 개입으로 한 차례 축출됐다가 2021년 다시 정권을 탈환한 집단입니다. 쉽게 말해, 20년 치 노력이 한 달 만에 뒤집힌 것입니다.

프랑스 대사관도 철수 준비로 정신이 없던 그때, 모하메드 비다 소령은 마지막까지 남기로 합니다. 자국민뿐 아니라 대사관 문 앞에 몰려든 아프간 협력자들까지 데리고 나가기 위해서입니다. 마르탱 부르불롱 감독은 이 실제 기록을 토대로 영화를 만들었고, 실제 비다 소령의 진술과 당시 대사관 관계자들의 증언이 시나리오에 반영됐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예고편만 봤을 때 "그냥 무난한 액션물이겠거니" 싶어서 한 번 넘겼습니다. '실화'라는 세 글자가 붙은 걸 나중에 확인하고 다시 틀었는데, 처음 보는 것과 완전히 다른 영화였습니다. 실화 기반 서사(敍事)란 실제로 일어난 일을 토대로 구성한 이야기를 말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그 무게가 장면 하나하나에 달라붙어 있습니다.

  • 2021년 8월 15일: 탈레반, 카불 입성 및 대통령궁 장악
  • 2021년 8월 26일: 카불 국제공항 인근 자폭 테러 발생, 170명 이상 사망 (출처: BBC 코리아)
  • 프랑스는 철수 작전 13일 동안 총 2,800명 이상을 카불에서 대피시킴
  • 영화는 그 중 대사관 내부에서 벌어진 가장 긴박했던 구간을 집중 조명
요약: 2021년 카불 함락이라는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영화는 프랑스 대사관에서 13일간 벌어진 탈출 작전의 기록을 그린다.

 

총이 아니라 명단으로 싸운다 — 탈출작전의 핵심 장면들

이 영화에서 제일 손에 땀을 쥐게 했던 건 총격전이 아니었습니다. 버스 행렬이 공항으로 향하는 구간, 탈레반이 갑자기 차를 세우고 탑승자 한 명 한 명의 신원을 확인하기 시작하는 그 장면입니다. 아프간 정보기관의 수장이었던 세디키가 들키면 그 자리에서 끝입니다. 카메라는 그 긴장을 아주 천천히, 말없이 따라갑니다.

엑스필트레이션(Exfiltration)이라는 군사 용어가 이 영화의 핵심 개념입니다. 여기서 엑스필트레이션이란 적대 지역에서 아군이나 협력자를 비밀리에 안전 제대로 빼내는 작전을 뜻합니다. 총을 들고 돌파하는 게 아니라, 탈레반 검문을 서류와 협상으로 통과하고, 버스를 수배하고, 명단을 조율하는 방식입니다. 이 영화의 긴장감은 거기서 나옵니다.

통역사 에바가 탈레반 앞에 나서는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탈레반은 여성에게 발언권 자체를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그 앞에 서서 협상 테이블에 오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영화는 대사 없이 에바의 얼굴 하나로 보여줍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용기를 설명하는 장면을 이렇게 조용하게 연출할 수 있다는 게요.

중반부에서 속도가 살짝 처지는 구간이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대부분의 실화 영화가 갖는 구조적 한계입니다. 13일의 사건을 두 시간에 담으려면 중요한 에피소드를 순서대로 실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감정의 호흡이 한 번씩 끊깁니다. 그래도 감정 과잉 연출을 철저히 피한 건 좋았습니다. 실화는 영화가 억지로 울고 웃길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냥 있었던 일이 무서운 겁니다.

주연 배우 로쉬디 젬은 제가 처음 접하는 얼굴이었는데, 영화 중반부부터는 배우라는 생각이 사라졌습니다. 목소리 톤 하나, 눈빛 하나가 "이 사람은 총이 아니라 절차와 싸우는 사람"이라는 걸 계속 확인시켜 줬습니다.

요약: 이 영화의 긴장감은 총격이 아니라 엑스필트레이션, 즉 협상과 명단과 버스로 사람을 빼내는 과정에서 나온다.

 

'500명을 구한 프랑스' — 서방 시각이 만드는 그림자

영화를 다 보고 나서 한참 자리를 못 떴습니다. 그런데 그 여운 중간에 걸리는 게 하나 있었습니다. 이 영화, 결국 프랑스의 눈으로 찍은 영화라는 사실입니다.

서사 구조(Narrative Structure)란 이야기를 누구의 시점에서, 어떤 순서로 배치하느냐를 결정하는 틀을 말합니다. 이 영화의 서사 구조는 처음부터 끝까지 비다 소령, 즉 프랑스 군인을 중심축으로 돌아갑니다. 아프간 협력자들은 구출 대상이고, 탈레반은 장애물이고, 에바는 도구적 역할에 가깝게 묘사됩니다. 500명을 실제로 살린 건 맞지만, 그 500명 각각에게 카불이 어떤 의미였는지는 영화 어디에도 없습니다.

제가 직접 자료를 찾아봤을 때, 프랑스는 2021년 8월 철수 작전 13일 동안 총 2,834명을 대피시켰다고 공식 집계됐습니다(출처: 프랑스 국방부). 영화가 담은 건 그 거대한 작전의 아주 좁은 단면입니다. 그 단면을 두고 '인간성의 마지막 사투'까지 끌어올리는 건 조금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프간인들에게 제대로 된 목소리가 없다는 점도 아쉬웠습니다. 통역사 에바 한 명이 수십만 아프간인들의 공포와 결단을 대변하기엔 너무 얇습니다. 그리고 비다가 상부 명령을 어기고 협력자들을 실어 보내는 장면은, 실제 기록보다는 영화적 장치 쪽으로 치우쳤다는 느낌입니다. 실제 비다 소령은 지시와 협상 사이를 오가며 작전을 수행한 사람이지, 반란을 일으킨 영웅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별점을 아예 낮게 주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세상 어딘가의 공항 문 앞에서는 들어가느냐 밀려나느냐로 운명이 갈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그 사실을 다시 꺼내 놓았습니다. 2021년 카불이 우리에게 얼마나 빨리 잊혔는지를 생각하면, 그것만으로도 볼 가치는 충분합니다. 저는 5점 만점에 3.5점을 줬습니다. 용기의 이야기가 아니라, 서방이 남긴 부끄러운 기록으로 읽었기 때문입니다.

요약: 영화는 실화를 충실히 옮겼지만, 프랑스 중심의 서방 시각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으며, 그 점을 의식하고 보면 다른 층위의 이야기가 보인다.

 

자주 묻는 질문

Q. '카불: 13일의 밤' 실제로 어디서 볼 수 있나요?

A. 2025년 4월 말부터 국내 주요 IPTV 플랫폼에서 서비스가 시작됐습니다. 제가 직접 확인한 건 그 시점이고, 현재 서비스 여부는 플랫폼마다 다를 수 있으니 검색 후 확인하시는 게 정확합니다.

 

Q. 영화 결말이 해피엔딩인가요?

A. 결말은 해피엔딩이라기보다 여운에 가깝습니다. 500명이 실제로 공항 문을 걸어 나갔다는 사실이 가장 강한 스포일러입니다. 다만 2021년 8월 26일 공항 인근에서 일어난 자폭 테러 장면이 영화에 담겨 있어, 보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는 않습니다.

 

Q. 주연 로쉬디 젬이라는 배우, 다른 작품도 있나요?

A. 저도 이 영화로 처음 접했는데, 알제리계 프랑스 배우로 프랑스 영화계에서 꾸준히 활동해 온 배우입니다. 이 작품 이후에 찾아보시면 필모그래피가 꽤 있다는 걸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Q. 이 영화, 잔인한 장면이 많은가요?

A. 직접적인 고어 연출은 거의 없습니다. 폭발 장면이 있지만 감정 과잉 없이 처리됩니다. 오히려 심리적 압박감이 큰 영화입니다. 총보다 상황이 더 무서운 형식입니다.

 

결론

저는 이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한참 자리에서 못 일어났습니다. 그건 영화가 잘 만들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2021년 8월 카불이 제게 이미 뉴스 속 한 장의 사진으로 닫혀 있었다는 걸 깨달아서이기도 합니다.

'카불: 13일의 밤'은 전쟁 영화이지만, 총이 중심에 없습니다. 엑스필트레이션 작전의 핵심은 누가 그 문 안으로 들어오는가를 결정하는 명단이고, 그 명단을 둘러싼 협상과 갈등과 결단이 이 영화의 본론입니다. 서방 시각이라는 한계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 한계를 인식한 채로 보면, 단순한 구출 영웅담이 아니라 한 시대가 어떻게 끝났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으로 읽힙니다.

2001년 9.11로 시작된 전쟁이 어떻게 마무리됐는지 궁금하신 분, 그리고 평범한 직업인이 어떤 방식으로 용기를 내는지 보고 싶으신 분께 권합니다. 결말이 아니라 과정이 무서운 영화입니다.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Fi-HnKZRIW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