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주말 저녁, 거실 리모컨을 마누라에게 넘기고 안방 노트북 앞으로 밀려난 날, 그냥 자기엔 아까워서 찜해뒀던 영화 하나를 틀었습니다. 2018년 개봉작 크리미널 스쿼드였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특수부대 출신 무장강도와 짐승 같은 형사가 LA를 무대로 펼치는 두뇌 싸움, 두 시간 내내 크레딧이 올라올 때까지 휴대폰을 한 번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텅 빈 트럭을 왜 목숨 걸고 훔쳤을까 — 연방준비은행을 노린 설계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특수부대 출신답게 무장을 갖춘 메리맨 일당이 현금 수송 트럭을 털었는데, 알고 보니 그 트럭이 텅 비어 있었다는 겁니다. 저도 처음엔 그냥 실수한 장면인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영화 전체의 판을 여는 첫 수였습니다.
메리맨의 진짜 목표는 연방준비은행(Federal Reserve Bank)이었습니다. 연방준비은행이란 미국의 중앙은행 역할을 하는 기관으로, 시중에 유통되는 지폐를 발행하고 관리하는 곳입니다. 문제는 이 은행에서 유통된 지폐는 지폐마다 일련번호(Serial Number)가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일련번호란 각 지폐에 고유하게 부여된 식별 코드로, 전 세계 어디서 다시 유통되더라도 추적이 가능한 구조입니다.
그래서 메리맨이 노린 것은 바로 폐기 직전 지폐였습니다. 연방준비은행은 낡은 지폐를 정기적으로 수거해 파쇄(Shredding)하는데, 파쇄 직전 일련번호 기록이 시스템에서 삭제됩니다. 즉, 파쇄되기 전에 그 지폐를 빼내면 추적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이 설정 하나에 저는 완전히 넘어갔습니다. 텅 빈 트럭은 수송 차량으로 위장하기 위한 사전 연습이자 연막이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치밀하게 계산된 수순이었던 거죠.
이런 종류의 설계를 영화에서 만나면 저는 자리를 고쳐 앉게 됩니다. 히트(Heat, 1995)를 비디오방에서 봤던 세대라면 그 느낌을 알 겁니다. 다만 히트가 사나이들의 서사였다면, 크리미널 스쿼드는 설계의 서사입니다. 국가가 돈에 번호를 새기고, 놈들은 그 번호가 지워지는 찰나를 노린다는 발상 자체가 달랐습니다.
- 연방준비은행: 미국 중앙은행, 지폐 발행·관리 기관
- 일련번호(Serial Number): 지폐마다 고유하게 부여된 추적용 식별 코드
- 파쇄(Shredding) 직전 지폐: 일련번호가 삭제되어 추적 불가 상태로 전환되는 시점
- 텅 빈 트럭: 진짜 작전을 위한 위장 수단 및 사전 리허설
사냥개인가 늑대인가 — 형사 닉의 반전설계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강도들의 계획이 아니라 형사 닉 오브라이언 캐릭터였습니다. 제라드 버틀러가 연기한 닉은 처음 봤을 때 그냥 막무가내 형사인 줄 알았습니다. 수사원을 무기처럼 휘두르고, 용의자를 어두운 곳으로 끌고 가 협박하고, 법의 경계를 아무렇지 않게 넘어다닙니다.
닉이 메리맨의 최측근 도니를 붙잡아 정부원(Informant)으로 돌리는 장면이 영화의 분기점입니다. 정부원이란 수사기관에 내부 정보를 제공하는 협조자로, 이 영화에서는 메리맨 일당 내부에 심어둔 눈과 귀 역할을 합니다. 닉은 도니를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끌어내 물리적 압박을 가한 뒤 조건부 석방을 제시합니다. 제가 직접 이 장면을 봤을 때, 닉이 형사인지 강도인지 순간 헷갈렸습니다. 그게 이 영화가 노리는 효과였겠죠.
닉이 놈들을 잡으러 뛰어가는 방식도 독특합니다. 메리맨 일당이 작은 은행 하나를 터는 척 경찰력을 한 곳으로 몰아넣는 연막 작전(Diversion Tactic)을 펼치는 사이, 닉만이 도면을 보고 진짜 목적지를 알아챕니다. 연막 작전이란 적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 진짜 행동을 숨기는 전술입니다. 경찰들이 작은 은행에서 수사권 싸움을 하는 동안 닉은 혼자 빠루 들고 연방준비은행 쪽으로 달려가는데, 이 장면에서 저는 실소를 터뜨렸습니다.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묘하게 설득이 됩니다.
영화 내내 누가 사냥개이고 누가 늑대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구조, 이게 크리미널 스쿼드의 핵심 재미입니다. 로저 에버트 연구소를 비롯한 여러 영화 비평 매체에서도 이 작품의 도덕적 모호성을 주목했는데(출처: RogerEbert.com), 제 경험상 이건 단순히 "나쁜 형사" 코드가 아니라 설계된 혼돈입니다. 누가 더 짐승인지 모르는 상태로 영화가 끝까지 달려갑니다.
묵직한 타격감, 그리고 솔직한 단점 — 하드보일드 액션으로 보는 기준
이 영화의 총격전 장면은 요즘 액션 영화들과 결이 다릅니다. 요즘 영화들은 화면을 흔들어놓고 편집으로 속도를 만드는데, 크리미널 스쿼드는 총기 반동 하나하나가 살아있습니다. 특수부대 출신 배우들과 전술 자문을 받아 촬영된 것으로 알려진 이 영화의 전술 사격(Tactical Shooting) 장면들은 현실감이 높습니다. 전술 사격이란 단순히 총을 쏘는 것이 아니라 엄폐·이동·팀원 간 연계를 조합한 실전형 사격 방식을 말합니다. IMDb 자료에 따르면 주요 배우들이 실제 군사 훈련 방식으로 사격 교육을 받았다고 합니다(출처: IMDb).
하드보일드(Hard-boiled)라는 장르 표현도 이 영화에 잘 맞습니다. 하드보일드란 도덕적 회색지대를 배경으로 냉소적이고 거칠게 현실을 묘사하는 스타일을 가리키며, 1940~50년대 필름 누아르 계보를 잇는 장르입니다. 크리미널 스쿼드는 이 하드보일드 문법을 정직하게 따릅니다. 저 같은 50대 취향에는 이런 영화가 반갑습니다.
단점도 억울하면 못 씁니다. 초반 전개가 산만하고, 등장인물이 열둘인데 제대로 살아있는 인물은 세 명뿐입니다. 제가 직접 봤는데 이름을 다 외우기도 전에 죽고 살고 합니다. 여성 캐릭터 하나는 편집 사고 난 것처럼 사라지는데, 이건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두 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았고, 끝나고 크레딧 올라오는 동안 휴대폰을 꺼내지 않았습니다. 중년 남자의 영화 기준으로는 이 정도면 꽤 높은 점수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크리미널 스쿼드, 히트(Heat)랑 비교하면 어떤가요?
A. 히트를 직접 봤던 분들이라면 비슷한 분위기를 기대하고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다만 히트가 사나이들의 감정선과 서사에 집중했다면, 크리미널 스쿼드는 설계와 반전 구조에 더 무게가 실립니다. 제 경험상 두 영화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조금 억울하게 느껴질 만큼 결이 다릅니다.
Q. 연방준비은행 지폐 파쇄 설정이 실제로 있는 건가요?
A. 네, 실제입니다. 연방준비은행은 유통이 어려워진 낡은 지폐를 수거해 정기적으로 파쇄하며, 파쇄 전 일련번호 데이터를 정리합니다. 영화는 이 실제 운영 방식을 활용해 "추적이 불가능해지는 찰나"를 공략한다는 설정을 만들었습니다. 이 디테일 덕분에 설정이 허구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Q. 제라드 버틀러 영화 중 이 정도 수준이면 어디쯤 되나요?
A. 제라드 버틀러 필모그래피에서 크리미널 스쿼드는 중간 이상으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화려한 CGI보다 배우의 실제 존재감이 살아있는 장르물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꽤 만족도가 높은 편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300이나 런던 해즈 폴른보다 이 영화의 하드보일드 질감이 더 취향에 맞았습니다.
Q. 가족이랑 같이 보기 괜찮은 영화인가요?
A. 폭력 묘사와 총격전이 상당히 직접적입니다. 청소년 이하 자녀와 함께 보기에는 적합하지 않고, 성인 가족끼리 액션 영화를 즐기는 분위기라면 무방합니다. 저는 마누라가 드라마 보는 사이 혼자 봤는데, 오히려 그게 더 집중이 잘 됐습니다.
결론
세상이 왜 이렇게 돌아가나 싶을 때 저는 가끔 이런 영화가 보고 싶어집니다. 국가가 돈에 번호를 새기고, 놈들은 그 번호가 지워지는 순간을 노리고, 형사는 법의 경계 바깥에서 달려드는 구조. 결국 다 돈 문제라는 걸 두 시간 안에 정직하게 보여줍니다.
크리미널 스쿼드는 완벽한 영화가 아닙니다. 인물은 많고 설명은 빠릅니다. 그러나 연방준비은행 파쇄 직전 지폐를 노린다는 설계 하나, 전술 사격의 묵직한 타격감 하나, 끝까지 누가 포식자인지 모르게 만드는 반전 구조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볼 만한 영화입니다. 하드보일드 액션을 좋아하는 분들, 두뇌 싸움이 있는 범죄 영화를 찾는 분들이라면 크리미널 스쿼드를 한 번쯤 틀어보시길 권합니다. 저는 오늘도 거실 리모컨을 마누라에게 넘기고 들어오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