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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8청춘>은 전소민·김도현 주연의 2024년 청춘 드라마로, 개봉 전부터 두 배우의 열연이 화제였습니다. 아내가 틀어준 영화를 "흘려볼 생각"으로 앉았다가, 결국 끝까지 자리를 못 뜬 게 저였습니다.

영화 배경 — 별난 선생님과 상처 입은 아이
희주(전소민)는 부임 첫날부터 예사롭지 않습니다. 칠판 앞에서 제 사인을 거침없이 갈겨쓰고는 "핸드폰 걷는 거 귀찮아서 안 할 거야, 너희끼리 알아서 해"라고 선언합니다. 학생들 폰을 걷지 않는 선생님. 처음엔 그냥 '쿨한 캐릭터' 설정이려니 했습니다.
그 반에 순정(김도현)이 있습니다. 체육 시간에 다른 아이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피지컬, 그러나 야간 자율학습은 습관처럼 빠집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매일 밤 술에 절어 들어오는 엄마 때문에 집에 있어야 하거나, 반대로 그 집에서 도망쳐야 하거나. 둘 다입니다.
여기서 영화가 꺼내드는 설정 하나가 묘하게 뜨끔합니다. 순정의 엄마 직업이 생활설계사입니다. 생활설계사(Life Planner)란 고객의 재무 목표와 생활 전반을 분석해 장기 계획을 세워주는 전문직을 뜻합니다. 남의 인생은 설계해 주면서 정작 자기 딸 인생은 아무것도 챙기지 않는다는 아이러니. 웃기면서도 쓰라렸고, 제가 직접 그 장면을 보면서 피식 웃다가 금방 씁쓸해졌습니다.
청소년기 가정환경이 정서 발달에 미치는 영향은 학계에서도 오래 다뤄온 주제입니다. 출처: 미국소아과학회(AAP)에 따르면 가정 내 만성적 스트레스 환경에 노출된 청소년은 분노 조절 어려움과 자기 효능감 저하를 겪을 가능성이 유의미하게 높습니다. 순정이 이유 없이 분노로 가득 찬 게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희주 선생님 — 공감 교육의 가능성과 한계
희주가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건 일기장입니다. 그것도 수행평가 점수와 무관한 일기장. "오늘 하루 자기 마음에서 어떤 감정이 일어났는지 적어라"는 게 전부입니다. 이걸 정서 리터러시(Emotional Literacy) 훈련이라고 부릅니다. 정서 리터러시란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으로, 충동 조절과 대인 관계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 오답노트는 있어도 마음노트는 없었는데, 그 장면이 유독 오래 걸렸습니다.
희주가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건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런 선생님이 현실에서 통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꽤 있을 겁니다. 저도 솔직히 그랬습니다. 폰을 안 걷고, 잔소리도 없고, 야자 빠지는 이유를 일일이 물어봐주는 선생님. 현실 학교라면 학부형 민원부터 날아올 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반면 희주를 '이상적 모델'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이 캐릭터가 제시하는 건 정답이 아니라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적 관리 위주의 교육 환경에서 감정 교육(Emotional Education)이 얼마나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가. 감정 교육이란 학업 성취 중심 교육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자존감·공감 능력·분노 조절을 학교 교육 안에서 다루는 방식을 말합니다. 영화는 그 질문을 던지고 답은 관객에게 넘깁니다.
출처: CASEL(협력적 학업·사회정서 학습)의 연구에 따르면 사회정서 학습(SEL) 프로그램을 도입한 학교에서 학생의 학업 성취도가 평균 11% 상승했다는 결과가 있습니다. 쿨한 선생님이 정답이라기보다, 감정을 다루는 교육 자체의 효과는 이미 데이터로 입증된 셈입니다.
- 희주의 마음일기 → 정서 리터러시 훈련의 실제 사례
- 폰 미수거, 잔소리 배제 → 자율성 기반 신뢰 교육의 시도
- 체육대회 제안 → 순정의 강점을 학업 외 영역에서 인정하는 방식
- 인권조례 제시 → 규칙을 방어 수단으로 아는 교사의 역할
순정의 성장 — 자수가 아니라 신뢰의 언어
학교 유리창이 두 차례 깨집니다. 학교는 왼손잡이에 평소 불만이 많다는 이유로 순정을 범인으로 지목합니다. 증거는 없습니다. 학생주임 선생님이 반까지 쫓아와 순정을 몰아세우자, 희주가 인권조례 제3조, 제5조, 제6조를 줄줄이 읊으며 막아섭니다.
솔직히 그 장면은 극적 연출이 강합니다. 현장에서 조례 조문을 암기하고 있는 선생님이 얼마나 될까,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장면이 강하게 남은 건, 어떤 어른이 아이 앞에 서는가의 문제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결말에서 순정은 제 손으로 창문을 깨고 "제가 했습니다"라고 나옵니다. 이걸 자수(自首)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읽었습니다. 자수란 법적 의미에서 범인이 수사기관에 자진 신고하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순정의 행동은 법적 자수가 아니라,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생겼을 때 비로소 감당할 수 있게 된 고백에 가깝습니다. 그전까지 순정은 "어차피 아무도 안 믿어주잖아요"라고 했습니다. 희주가 끝까지 "네가 아니잖아"라고 말해준 게, 역설적으로 순정이 스스로 나설 수 있게 만든 겁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머릿속에 남은 장면이 그 부분입니다. 김도현 배우가 그 나이에 눈빛으로만 다 표현했습니다. 전소민은 발랄한 연기가 기본기인데, 이 영화에서는 그 발랄함 아래 묵직함이 깔려 있어서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두 배우의 마지막 장면은 말이 없는데 오히려 더 많은 걸 전달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18청춘, 가족이랑 같이 봐도 괜찮나요?
A. 청소년 관람가 등급의 영화로, 가정폭력과 음주 장면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극적인 수위는 아니지만 어린 자녀와 함께라면 그 장면들이 대화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부모와 10대 자녀가 함께 보고 이야기 나누기에 적합한 영화라고 봅니다.
Q. 희주 선생님처럼 폰 안 걷는 교사가 현실에도 있나요?
A.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합니다. 일부 학교에서 자율적 미디어 사용 교육을 시도하는 사례가 있다는 시각도 있는데, 현행 교육 현장에서는 학교 규정과 학부형 요구 사이에서 개별 교사의 재량이 매우 제한적인 게 현실입니다. 영화 속 희주는 이상적 시도를 보여주는 캐릭터로, 현실의 벤치마크라기보다 질문의 형태로 받아들이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Q. 전소민이 이런 역할 처음 해보는 건가요?
A. 전소민 배우는 코미디와 발랄한 캐릭터 이미지가 강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 에너지를 억누르지 않으면서도 묵직한 장면을 함께 소화합니다. 과하다는 의견도 있는데, 저는 그 발랄함이 오히려 순정에게 경계를 내려놓게 만드는 장치로 기능한다고 읽었습니다.
Q. 결말에서 순정이 진짜 범인인가요?
A. 영화는 초반 두 번의 창문 파손 사건과 결말부의 파손을 다르게 처리합니다. 순정이 손으로 직접 창문을 깨는 마지막 장면은 명확하지만, 그 이전 사건들의 범인은 영화가 명시적으로 확정짓지 않습니다. 그 모호함 자체가 "증거 없는 단정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말하는 장치입니다.
결론
한 번은 볼 영화입니다. 두 번 볼 영화냐고 묻는다면, 저는 개인적으로 한 번으로 충분했습니다. "불쌍한 학생 + 무관심한 부모 + 구원자 선생님"이라는 구도 자체는 새롭지 않고, 희주 선생님이 정답인 것처럼 포장되는 부분이 중간중간 걸렸습니다. 그래도 이 영화가 남기는 질문은 진짜입니다.
아이의 성적이 아니라 아이의 마음을 먼저 본 적이 있는가. 제 경험상 이건 부모든 선생님이든 쉽지 않습니다. 도파민 과잉의 시대에 감정을 천천히 들여다보는 영화가 드물어진 것도 사실이고, 그런 면에서 <18 청춘>은 한 번쯤 틀어볼 가치가 있습니다. 아이 때문에 고민 중인 분이거나, 옛날 선생님 한 명이 문득 떠오르는 분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