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면, 저는 이 영화를 볼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떠밀어서 리뷰 영상을 반쯤 흘려보다가, 그날 밤 결국 OTT를 켰습니다. 2025년 공개된 마이클 센크스 감독의 . 제작비 350만 달러짜리 저예산 바디 호러인데, 이틀이 지나도록 머리에서 안 나갑니다. 수색견이 먼저 이상해지는 건 왜 더 무서울까영화는 실종된 커플을 찾는 수색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수색견 두 마리가 동굴 속 의문의 우물을 발견하고, 그 물을 마신 뒤부터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서로 마주 보고 있고, 그날 밤 견사에서 기괴한 소리가 납니다. 견주가 달려가서 본 장면은 영화 내내 복선이 됩니다.제가 직접 봤는데, 사람보다 개가 먼저 변한다는 설정이 묘하게 더 무섭습니다. 사람이 먼저 증..
스티븐 스필버그 신작 《디스클로저 데이》 예고편을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저는 우주선 한 대 안 나온다는 사실부터 눈에 들어왔습니다. 기상캐스터가 날씨를 전하다 말이 분해되고 이상한 리듬의 소리를 내뱉는 장면. 그게 이 영화의 첫 단추입니다. 제 경험상 스필버그가 미지를 표현할 때 폭발로 시작한 적은 별로 없었습니다. 로즈웰에서 2026까지, 79년의 맥락학창 시절 저는 우주인 목격담 잡지를 몰래 돌려 봤고, 20대엔 X-파일에 빠져 살았습니다. 그 시절 소문은 소문으로 끝났습니다. 퍼지는 데 1년이 걸렸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기상캐스터가 말을 더듬는 순간, 전 세계가 동시에 목격자가 됩니다. 스필버그가 하필 이 장면으로 영화를 연 건 그 시대적 변화를 노린 거라고 봅니다.영화 제목 디스클로저란 은폐된..
전쟁 영화의 영웅은 총을 잘 쏘는 사람이어야 할까요? 2021년 8월, 프랑스 대사관 소령 모하메드 비다는 총 대신 명단과 협상으로 500명을 살렸습니다. 영화 '카불: 13일의 밤(원제: 13 Jours, 13 Nuits)'은 그 13일의 기록입니다. 저는 IPTV에서 이 영화를 봤는데, 실화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부터는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습니다. 실화는 예고편보다 무섭다 — 2021년 카불 함락의 실화배경혹시 2021년 8월, 수송기 바퀴에 매달려 하늘로 올라가던 사람들 사진을 기억하십니까? 저는 그날 뉴스를 직장에서 봤는데, 9.11 테러 다음 날 아침과 같은 묘한 멍함이 있었습니다. 2001년에 시작된 전쟁이 20년 만에 저런 사진 한 장으로 끝났다는 게 그때는 실감이 안 났습니다.영화의 ..
솔직히 저는 유튜브 썸네일에 "소름돋는 명작"이라고 붙어 있으면 먼저 걸러내는 편입니다. 그런데 주말에 딱히 볼 게 없어서 애플TV 신작 메이데이(Mayday)를 별 기대 없이 눌렀고, 두 시간 뒤에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라이언 레이놀즈와 케네스 브래너가 냉전 한복판을 누비는 이 버디무비, 명작까진 아니지만 주말 저녁을 제대로 쓸 수 있는 영화입니다. 1987년 냉전의 공기, 그리고 뜻밖의 시작제가 80년대 후반에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소련은 교과서 속 단어였습니다. 핵 억지력, 즉 양측이 핵무기를 보유함으로써 서로 먼저 공격하지 못하게 막는 전략적 균형이 냉전의 핵심 논리였는데, 그 긴장이 실제로 어떤 느낌이었는지는 잘 몰랐습니다. 메이데이는 1987년을 배경으로 그 시대 공기를 꽤 우직하게 깔아줍니..
오십이 넘으면 공포영화를 보는 눈이 바뀝니다. 귀신이 튀어나오는 장면보다,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장면이 더 무서워지거든요. 영화 를 보면서 저는 딱 그 느낌을 받았습니다. 전 여친 부고 문자 한 통이 어떻게 한 가족을 무너뜨리는지, 그 과정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섬뜩했습니다. 세이레란 무엇인가 — 왜 이 금기가 공포의 출발점이 되는가아기가 태어난 집에 왜 외부인이 들어오면 안 된다는 말이 생긴 걸까요. 저도 어릴 때 어머니가 이웃집에 아이가 생기면 삼칠일이 지나기 전까진 얼굴도 보러 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때는 그냥 유난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그 말이 다시 생각났습니다.세이레(三七日)란 아이가 태어난 뒤 21일, 즉 삼칠일이 되는 날까지의 기간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세이레란 산..
이 영화에서 진짜 무서운 건 악령이 아닙니다. 한 남자가 평생 혼자 끌어안고 살아온 죄책감, 그게 핵심입니다. 밤에 별 기대 없이 틀었다가 끝나고 나서도 한참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자극적인 장면보다 주인공이 왜 그런 선택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는지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더군요. 매일 밤 찾아오는 악몽 — 부적과 트라우마의 시작전직 군인 토마스는 전쟁 중에 이상한 부적을 주운 이후로 매일 같은 악몽을 꿉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 이 악몽 장면이 단순한 공포 연출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가 보초를 서던 날, 한 여자가 경고를 무시하고 달려오다 그 앞에서 쓰러집니다. 군인으로서 통행을 막아야 했지만, 이대로 두면 죽을 게 뻔했습니다. 그는 그녀를 숨겨주기로 합니다.그런데 결국 그날 그는 최악의 선택을 ..
아카데미 9개 부문 후보, 골든글로브 3개 부문 노미네이트. 그 숫자만 보고 극장에 들어갔다가, 저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기분으로 나왔습니다. 오십이 넘도록 두 시간 내내 핸드폰에 손이 한 번도 안 간 영화가 얼마나 됩니까. 마티 슈프림이 그랬습니다. 이 주인공을 어떻게 봐야 할까, 캐릭터 분석영화를 다 보고 나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이 뭔지 아십니까. '나는 이 사람을 응원했던 건가, 욕했던 건가.' 그 경계를 끝까지 긋지 못했습니다.주인공 마티 마우저는 195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등장합니다. 티모시 샬라메가 연기하는 이 인물은 삼촌 신발 가게에서 손님 발에 맞지도 않는 신발을 억지로 끼워 넣으며 말로 위기를 넘기는 장면으로 처음 소개됩니다. 여기서 조시 사프디 감독이 쓴 방식이 영리한데, 대사 한 ..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완전히 잘못 읽고 들어갔습니다. 예고편만 보고 '90년대 추억팔이 청춘물이겠거니' 하고 좌석에 앉았는데, 두 시간 후 극장을 나오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이게 이렇게 웃겨도 되나'였습니다. 와일드 씽은 제가 올해 극장에서 가장 많이 웃은 영화입니다. 단, 그게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말은 아닙니다. Y2K 감성이 통한 이유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버스 안에서 헤드폰을 낀 강동원 얼굴이 스크린 가득 잡혔습니다. 극장 안이 술렁이더라고요. 웅성거리는 소리가 제 주변 몇 줄에서 동시에 들렸습니다. 마흔이 훌쩍 넘은 배우에게 저 얼굴이 아직도 저렇게 통하는구나 싶어서, 저도 어이가 없어 피식 웃음이 터졌습니다.그다음 장면이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강공원 댄스 배틀에서 강동원이 직접 브레이크..
제작비 12억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는데도 영화를 완성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요. 저는 그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서 결국 이 글을 씁니다. 유튜브 피드에 올라온 영상 하나를 무심코 눌렀다가, 신인 감독이 돈을 들고 튄 PD 뒤수습을 하는 장면에서 손이 멈췄습니다. 영화 '카를로비바리'. 9월 9일 극장에 걸린, 올해 제가 가장 눈여겨본 한국 독립영화입니다. 제작비 손실, 이게 실제로 어떤 느낌인지 아십니까영화 속 설정이 이렇습니다. 신인 감독 성제는 인생을 걸고 장편영화 '카를로비바리'를 찍고 있었습니다. 총 제작비 12억 원. 그런데 남은 촬영 분량의 20%가 전부 체코 현지 로케이션인 상황에서, 제작 PD가 돈을 전부 들고 사라져 버립니다.여기서 로케이션(location)이란 스튜디오 밖의 실제 장..
잠이 안 오는 밤, 유튜브 알고리즘이 밀어준 영화 요약 영상 하나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제목부터 거창한 감염 재난물처럼 보였지만, 막상 보고 나니 이건 괴물 영화가 아니라 상실한 아버지의 이야기였습니다. 2024년 제한 개봉한 미국 영화 '아웃브레이크(Outbreak)', 제작비 100만 달러짜리 저예산 작품이 품은 반전이 꽤 묵직했습니다. 감염 재난물처럼 시작하지만, 배경은 다릅니다공원 경비원 닐 모리스는 아들 벤을 잃고 무너진 삶을 버티는 남자입니다. 아내 에비와 함께 하루하루를 견디던 어느 날, 동료 마이크가 경비견에게 물린 뒤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이상해지기 시작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전형적인 좀비 아포칼립스, 즉 문명이 붕괴된 세계를 배경으로 한 생존 장르처럼 읽힙니다.그런데 이 영화의 제작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