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비 12억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는데도 영화를 완성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요. 저는 그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서 결국 이 글을 씁니다. 유튜브 피드에 올라온 영상 하나를 무심코 눌렀다가, 신인 감독이 돈을 들고 튄 PD 뒤수습을 하는 장면에서 손이 멈췄습니다. 영화 '카를로비바리'. 9월 9일 극장에 걸린, 올해 제가 가장 눈여겨본 한국 독립영화입니다. 제작비 손실, 이게 실제로 어떤 느낌인지 아십니까영화 속 설정이 이렇습니다. 신인 감독 성제는 인생을 걸고 장편영화 '카를로비바리'를 찍고 있었습니다. 총 제작비 12억 원. 그런데 남은 촬영 분량의 20%가 전부 체코 현지 로케이션인 상황에서, 제작 PD가 돈을 전부 들고 사라져 버립니다.여기서 로케이션(location)이란 스튜디오 밖의 실제 장..
잠이 안 오는 밤, 유튜브 알고리즘이 밀어준 영화 요약 영상 하나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제목부터 거창한 감염 재난물처럼 보였지만, 막상 보고 나니 이건 괴물 영화가 아니라 상실한 아버지의 이야기였습니다. 2024년 제한 개봉한 미국 영화 '아웃브레이크(Outbreak)', 제작비 100만 달러짜리 저예산 작품이 품은 반전이 꽤 묵직했습니다. 감염 재난물처럼 시작하지만, 배경은 다릅니다공원 경비원 닐 모리스는 아들 벤을 잃고 무너진 삶을 버티는 남자입니다. 아내 에비와 함께 하루하루를 견디던 어느 날, 동료 마이크가 경비견에게 물린 뒤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이상해지기 시작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전형적인 좀비 아포칼립스, 즉 문명이 붕괴된 세계를 배경으로 한 생존 장르처럼 읽힙니다.그런데 이 영화의 제작 ..
솔직히 저는 이 영화가 이렇게 오래 남을 줄 몰랐습니다. 2011년작 티베트 영화 , 감독은 페마 체덴. 사자개 한 마리와 늙은 유목민 아버지의 이야기인데, 다 보고 나서 30분은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줄거리는 단순합니다. 그런데 그 단순함이 오히려 더 무겁게 내려앉습니다. 티베트 사자개, 어떻게 상품이 됐나영화가 배경으로 삼은 건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티베트 초원입니다. 이 시기 티베트 마스티프, 즉 사자개의 시장 가격이 급등합니다. 티베트 마스티프란 티베트 고원에서 수천 년간 유목민과 함께 살아온 대형 견종으로, 외부 세계에서는 희귀 혈통견으로 분류됩니다. 한때 순혈 사자개 한 마리가 중국 본토 부호들 사이에서 수십만 위안, 심지어 100만 위안을 웃도는 가격에 거래됐다는 기록이 있습..

